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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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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p 대통령’ 윤석열의 거짓말…“통합” 버리고 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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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성한용 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국민 갈라치기 기름 붓는 윤 대통령

사회적 관계까지 무너뜨리는 정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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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2022년 3월10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발언한 뒤 주먹을 쥐어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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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서 맞수가 벌이는 라이벌전은 아름답습니다. 사립 명문 배재고와 양정고의 럭비 정기전이 있습니다. 배재 출신들은 배양전, 양정 출신들은 양배전이라고 합니다. 저는 배재 출신이라서 배양전이라고 부릅니다. 배양전은 경기도 경기지만 학생들이 벌이는 응원전이 더 볼만합니다. 두 학교 학생들의 응원가와 율동, 카드섹션, 보디섹션이 경기 내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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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면 두 학교 학생들은 서로의 교가를 불러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저는 지금도 양정고 교가를 정확히 부를 수 있습니다. 매년 미식축구 경기를 벌이는 미국 육사와 해사의 라이벌 관계도 재미있습니다. 오래전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육사 체육관 지붕의 ‘싱크 네이비’(SINK NAVY)라는 글자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해군을 침몰시키자는 뜻입니다. 미국 해군 소속 배나 비행기에서는 ‘비트 아미 고 네이비’(BEAT ARMY GO NAVY)라는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육군을 때려눕히자. 해군 파이팅!” 정도일 겁니다.

이처럼 스포츠에서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라이벌 관계가 정치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상대 후보나 상대 정당을 인정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권력을 놓고 다투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국민 갈라치기 하는 대통령


최근 정치 양극화가 정가와 학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보화·모바일 혁명으로 유권자들이 확증편향에 휩싸이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과거에는 선거가 끝나면 패배자는 선거 결과에 승복했습니다. 승리자는 패배자를 포용했습니다. 이제 그런 미덕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패배자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습니다. 승리자는 패배자를 탄압합니다.

지난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린 일산 킨텍스 행사장에서 가수 박상민씨가 행사 도중 축하 공연을 했습니다. 박상민씨는 ‘너에게로 가는 길’ ‘해바라기’ 두 곡을 부른 뒤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수생활 하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다. 여기 와서 노래 부르는 것을.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좌우 가리지 말고, 보수 진보 가리지 말고, 세련되게 우리나라 잘 살게 해 달라. 제발 좀. 징그러워 죽겠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나라 만들어 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박상민씨 정도의 유명 가수가 정당 행사에서 공연했다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것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한심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0.73%포인트 박빙 승부가 펼쳐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해석한 뒤 “저는 이러한 국민의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대선 1년이 지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갈라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선거 직후 결과에 승복하며 “당선자께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6월1일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곧이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대표가 됐습니다. 대선이 끝났는데도 승자와 패자,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다시 맞붙는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대선 연장전 구도에서 양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점점 더 심하게 뿜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진에 장난감 활을 쏘는 부스가 설치된 적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위에 부적을 붙이는 이벤트도 했습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이재명 대표 부모의 묘소를 누군가 훼손하고 주술을 적은 돌을 묻어 놓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요?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가 지난해 12월21일부터 올 1월15일까지 18살 이상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대면 면접 조사를 해서 발표한 자료가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먼저 어떤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답변이 92.6%로 1위였습니다. 다른 갈등은 영남과 호남 84.3%, 정규직과 비정규직 82%, 부유층과 서민층 80.6%, 대기업과 중소기업 76.6%, 노사 75.3%,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66.2%, 수도권과 지방 65.6%, 남성과 여성 44.2%의 차례였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이념입니다. 이념 갈등이 지역·계층·세대·젠더 갈등을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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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자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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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상대 정당에 대한 호감도를 물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61.8%가 민주당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변했습니다. 30.2%는 보통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는 74.1%가 국민의힘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변했습니다. 16.3%가 보통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자가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물었습니다. ‘상대 정당 지지자가 나 또는 내 자녀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변한 사람은 10명 중 4명꼴이었습니다.(민주당 지지자 41%, 국민의힘 지지자 40.1%)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지지 정당이 다르면 결혼을 하거나 사돈을 맺기도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나와 절친한 친구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한 경우도 비슷한 비중이었습니다.(국민의힘 지지자 39.6%, 민주당 지지자 38.5%) ‘내 가까운 이웃이 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응답은 국민의힘 지지자 29.2%, 민주당 지지자 28%, ‘내 직장 동료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응답은 국민의힘 지지자 30.2%, 민주당 지지자 27.2%였습니다.

‘조금 다른’ 독일은 어떻게?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한 자료도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한국, 독일 순으로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의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86.8%, 민주당 지지자들의 공화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86.8%였습니다. 영국은 보수당 지지자들의 노동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82.6%, 노동당 지지자들의 보수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80.5%였습니다. 독일은 사민당 지지자들의 기민당 비호감도가 23.8%, 기민당 지지자들의 사민당 비호감도가 16.6%였습니다.

흥미로운 관찰 지점은 나라별로 비호감도의 변화 추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해가 갈수록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한국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정반대로 해가 갈수록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독일은 2005년 이후 기독민주연합(CDU·기민당)과 사민당(SPD) 대연정이 반복되면서 양당 간 비호감도가 많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정당 간 연합정치 경험이 당파적 적대 감정을 완화할 수 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일찌감치 ‘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참 대단한 정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직후 국회 시정연설에서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17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게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했습니다. 반향이 없었습니다.

2005년 다시 한번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설익은 구상은 여야 모두의 반대에 부닥쳤고 노무현 대통령은 ‘실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광야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목놓아 부르던 ‘선지자’의 외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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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도 대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거대 양당 지지자들의 적대감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예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살리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을 했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상대 악마화로 거저먹으려 해…6공 정치체제 수술해야”라는 제목입니다. 유인태 전 의원은 “다당제로 갈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당은 중도 친화적인 인사들과, 개딸로 통칭되는 강성 인사들과 각각 의석을 나눌 수 있다. 국민의힘의 개혁적 인사들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유권자도 달라져야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고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선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선거법 개정을 위해서는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개헌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유권자도 각성해야 합니다. 증오를 부추기는 극단 세력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공존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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