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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소녀상 철거”·수요시위 방해…곳곳서 ‘역사 지우기’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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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인사들 활개…“정부 해법 발표가 그들에 힘 실어준 꼴”

인천 ‘일제 조병창’ 철거 위기…해수부 독도 사업 진척 더뎌

“식민 역사 부정 메시지 줘…중국·유럽 등은 기억 투쟁 지속”

정부가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징용) 해법안 등을 통해 일본에 우호적 손길을 내민 시기 공교롭게도 사회 곳곳에서 일제강점기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역사적 건물을 철거하는 등 퇴행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외치며 ‘이제 그럴 만한 국력이 됐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대일 메시지가 일으킨 파장이 여러 현장에서는 ‘역사 지우기’를 가속화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위안부 성노예제 피해자의 상징인 소녀상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지난 7일 세종시 세종호수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소녀상은 그릇된 역사인식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투영된 증오의 상징물”이라며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위안부는 직업여성”이라는 주장도 거리낌 없이 펼쳤다.

3·1절 전후로는 소녀상이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세종여성회 등 시민단체는 지난 1일 104주년 3·1절 기념행사를 진행하던 중 세종호수공원 내 소녀상에 씌워진 모자와 망토가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날 충남 홍성에 설치된 소녀상의 얼굴에도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 자국이 발견됐다.

수요시위는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로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수요일인 지난 1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하자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보수단체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들은 2020년부터 수요시위가 열리던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미리 집회신고를 내오고 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극우 인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꼴”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현장인 건물도 철거 위기에 처했다. 인천 부평구청은 지난 7일 한국환경공단이 부평 미군기지 내 위치한 일제강점기 무기 제조공장 조병창병원의 철거 허가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구청은 조만간 이를 허가해줄 계획이다. 1939년 설치된 조병창병원은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노역을 시킨 장소다.

국내 곳곳에서 ‘역사 지우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일본은 자국과 해외에 걸쳐 역사왜곡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8일 35년 만에 자국 내 섬을 재집계했다고 발표하면서 독도를 자료에 포함했다. 현지 언론은 새 집계 결과가 교과서 및 각 부처의 백서를 작성할 때 표준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부의 ‘독도 지키기’ 사업은 진행이 더딘 상태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독도입도지원센터 건립 관련 예산 23억3800만원을 전액 불용했다. 독도입도지원센터는 독도 영유권 행사를 목적으로 독도 방문관광객에 대한 안전관리와 독도 거주 학술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해수부는 관계부처 간 이견을 이유로 들었지만 일본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메시지와 조치들이 강제동원과 위안부 성노예제를 부정하는 일본 입장을 옹호하는 일부 세력이 득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현 정부는 역사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 해법을 통해 식민 역사를 부정해도 되고, 식민유산에 대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문제 제기를 무시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게 됐다”고 했다. 이어 “일본에 식민 피해를 본 중국, 나치 치하를 겪은 유럽의 경우 계속 가해국에 반성을 요구하는 기억투쟁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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