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스즈키 노부유키. [스즈키 노부유키 당시 블로그 캡처] |
“2013고단706 스즈키 노부유키, 피고인 출석 안 했을 것 같아서….”
1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513호 법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일 년 만에 연 재판을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상 말뚝 테러’를 자행한 일본 극우 인사 스즈키 노부유키(58)는 이날까지 23번 열린 재판에 모두 불출석했다.
사건번호에서 알 수 있듯 이 재판은 2013년 시작됐다. 스즈키는 2012년 6월과 9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과 일본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에 ‘독도는 일본 영토’라 적은 말뚝을 묶었고 2013년 2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2012년 9월 스즈키 노부유키가 일본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비에 나무 말뚝을 둔 모습.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스즈키 노부유키 블로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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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9월 첫 재판이 열렸지만 이날까지 11년째 첫 기일만 반복하고 있다.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서다. 법원은 일본에 국제사법공조를 요청한다지만 사실상 소환장 전달만 부탁할 수 있을 뿐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다음 기일에도 출석 안 하면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발부했다 못 써먹고 기한(1년)이 지나 반납한 구속영장만 7개다.
우리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은 스즈키가 한국에 와야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범죄인인도조약을 맺긴 했지만, 실제 강제송환은 외교적 문제다. 법무부는 2018년 9월 스즈키에 대해 일본 정부에 인도 청구를 했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답변이 온 것이 없다.
피고인 없이 재판하기도 어렵다. 사건이 경미하거나 공소기각 나올 게 뻔하거나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을 법원이 받아준 경우, 구속된 피고인이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지만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피고인이 행방불명된 경우 피고인 진술 없이 재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법원은 이날까지 23차례 재판을 열면서 매번 소환장을 전달해 달라고 일본 정부에 부탁해 왔는데 최소 7번은 스즈키에게 전달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11년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스즈키 노부유키에 대한 명예훼손·모욕 혐의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피켓을 들고 있는 이옥선 할머니는 지난해 별세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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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는 수사 때부터 출석하지 않았고 만행을 계속해 왔다. 자신을 소환한 서울중앙지검에 오히려 ‘다케시마의 비’를 보내줬다며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2012년 9월),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에 ‘제5종 보급품(군인에게 성매매하는 여성을 뜻하는 용어)’이라 쓴 상자에 다리가 없는 소녀상을 보내기도 했다(2015년 5월). 그는 2017년 7월 도쿄도 카츠시카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 재판의 시효는 2038년 2월까지다. 공소가 제기된 때부터 25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되고 면소 판결을 내려야 한다. 24번째 첫 재판은 다음 달 21일 열린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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