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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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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에 밉보인 만화 '맨발의 겐', 히로시마 평화교육 교재서 삭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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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피폭의 참상 전한 자전적 만화
"피폭 실상 전달 어렵다" 이유로 삭제
일왕 비판 등으로 우익엔 눈엣가시
한국일보

일본 히로시마시 교육위원회가 10년 전부터 시립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사용한 평화교육 교재 중 ‘맨발의 겐’이 인용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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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원자폭탄의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 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 ‘맨발의 겐’이 일본 히로시마시 초등생을 위한 평화교육 교재에서 삭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2012년 별세한 고(故) 나카자와 게이지가 자신의 피폭 체험을 토대로 그린 이 만화는 강한 반전·반핵 메시지를 담고 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만행, 일왕 비판 등의 내용으로 인해 우익 세력의 표적이 됐고,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최근 교도통신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히로시마시 교육위원회는 10년 전부터 시립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해 온 평화교육의 교재에서 ‘맨발의 겐’을 인용한 장면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오는 4월부터는 다른 피폭자의 체험기를 수록한 새 교재를 사용할 방침이다.

현행 교재에는 주인공 소년 겐이 거리에서 노래극을 연주하며 푼돈을 버는 에피소드나 영양실조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잉어를 훔치는 장면, 무너진 집에 깔린 아버지가 겐에게 ‘도망가라’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교사들로부터 “이야기 전후의 흐름과 시대 배경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수업 시간에 피폭의 실상을 전하는 것이 힘들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돼 삭제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일보

50년 동안 세계 24개 언어로 번역된 만화 '맨발의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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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빈곤, 피폭의 참혹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는 이 만화가 ‘피폭의 실태를 전하기 어렵다’는 해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20일 아사히신문도 ‘맨발의 겐을 읽는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피폭의 실상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겐은 나 자신’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실제로 목격한 나카자와가 강한 분노를 담아 그린 만화가 현실에 가깝지 않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생전 작가의 어시스턴트였던 배우자 나카자와 미사요도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남편이 피폭 장면을 그리다 너무 고통스러워 펜을 멈췄을 때를 떠올리며 “죽을 때의 뜨거움, 불에 타 죽는 뜨거움을 그리는 것이 너무 힘들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73년부터 14년간 연재돼 누계 1,000만 부 이상이 발행된 '맨발의 겐'은 50년 동안 24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에서 읽혔다. 그러나 일왕 비판 등으로 인해 우익 세력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교육 현장에서 '맨발의 겐'을 추방해야 한다는 청원도 많았다. 2013년 시마네현 마쓰에시 교육위원회는 잔혹한 장면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관내 학교에서 열람을 금지했다가 파문이 일자 철회했다. 2014년에도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 교육위원회가 관내 학교에 비치돼 있던 서적을 회수했다가 항의를 받고 반납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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