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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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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 광기로 천변만화하는 피아노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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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다닐 트리포노프가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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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32)의 연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연한 수채화처럼 색을 칠하기 시작하던 그는 연주가 절정에 치달을수록 그 색을 진하게 만들며 점점 형태를 완성해나갔다. 끝으로 갈수록 농도의 변화가 짙어지는 다채로운 연주는 그의 내한을 9년 동안 기다린 관중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트리포노프의 내한 독주회는 그가 현 세기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연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적합했다.

트리포노프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쇼팽 콩쿠르 3위 입상에 이어 루빈스타인 콩쿠르 우승 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해 기대를 모았던 그는 우승과 함께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전 부문 그랑프리를 휩쓸며 신생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한국에서는 손열음(2위), 조성진(3위) 등 당시 경쟁했던 한국인 연주자들이 주목받으며 함께 지명도를 높였다.

이날 공연에서 트리포노프는 차이콥스키를 비롯해 슈만, 모차르트, 라벨, 스크랴빈 등 성향이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며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진 연주자라는 점을 뽐냈다.

긴 머리를 치렁거리며 무대에 오른 그가 처음 선보인 곡은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이었다. 초심자를 위해 쓰인 곡으로, 좀처럼 연주곡으로는 쓰이지 않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트리포노프는 단조로운 이 곡을 통해 관객들의 동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깊이 있는 해석이 더해진 이 곡은 더 이상 연습곡이 아니라 어른들의 소싯적을 위로하는 곡이 됐다. 슈만의 '판타지'로 이어지는 연주도 트리포노프만의 해석이 더해지며 환상에 빠진 관객들을 더욱 매료시켰다.

1부에서 평온했던 그의 연주는 2부에 돌입하자 화려한 맛을 더했다. 모차르트의 '환상곡 다단조'에서 느리고 빠른 템포가 오가는 과정에서도 트리포노프가 내는 소리는 견고했다. 그는 곡의 변화무쌍함을 단조롭지만 강하게 표현해나갔다.

트리포노프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서 '물의 요정(Ondine)' '교수대(Le Gibet)' '스카르보(Scarbo)', 3편의 시 속에서 가스파르를 유혹하는 분위기의 변화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특히 '교수대'에서 그가 표현한 종소리는 적막함을 극대화하며 잔상을 남겼다.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5번'에서 널뛰는 화음으로 신비와 광기를 만들어내며 공연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린 트리포노프는 앙코르로 지난해 발매한 음반에도 수록한 바흐의 '칸타타'를 연주하며 박수와 환호에 화답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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