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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다시 원점 돌아간 연금개혁… 국회·정부 투트랙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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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안 10월 도출 빨간불

연금개혁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자문위원들 “예상못해… 당황스럽다”

속도전 앞세우던 정부·국회 스텝꼬여

국회 ‘구조개혁’ 정부 ‘모수’ 집중방안

당초 2022년 연금개혁 본격 논의 전 제시

일각 “자문위가 단일안 마련 못해

정치권에 회피 여지 줬다” 시각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국민연금제도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에 우선 집중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연금개혁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왔다. 연금개혁 초안을 위해 논의해온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 위원들도 예상치 못한 방향 전환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회가 모수개혁을 정부 몫으로 돌리면서 국회는 구조개혁 방향을 잡고, 정부가 모수개혁을 추진하는 ‘투트랙’으로 개혁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 초안 제출 일정부터 꼬인 탓에 10월까지 나올 예정이던 정부 개혁안도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일보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5년 전 4차 재정추계 때보다 기금소진 시기는 2년 앞당겨진 2055년으로 예상됐다. 연금 기금은 2040년 1755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이듬해인 2041년부터 지출이 수입보다 커지면서 기금이 감소하기 시작해 2055년에는 47조원의 기금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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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자문위원들 “당황스럽다”

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자문위 위원들은 개혁 방향이 갑자기 바뀐 것에 대해 “당황스럽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금특위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 자문위 공동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와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청와대 사회수석)가 전날 만나기 전까지는 개혁 방향이 바뀔 수 있다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트랙 개혁은 애초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에 제시됐던 방안이다. 올해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이뤄지는 재정계산이 진행되는 해여서다. ‘더 내고 더 받는’ 등의 지출과 수급에 대해 정하는 모수개혁은 연금의 재정과 연관이 크다. 정부가 이번 5차 재정추계 결과를 토대로 오는 10월까지 연금제도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는 만큼, 정부가 모수개혁을 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금특위도 자문위를 구성해 구조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나섰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연금특위는 ‘연금개혁 속도전’을 내세우며 지난해 11월 구성된 자문위에게 지난달까지 개혁 초안을 내라는 미션을 줬다. 자문위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가동됐는데 의제를 구체적으로 살피는 데 한 달 정도가 소요됐고, 구체적인 개혁 논의는 사실상 지난 한 달간 진행됐다.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구조개혁을 짧은 시간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자문위는 구조개혁에 대해선 방향을 제시하고 모수개혁에 집중했던 것이다.

세계일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와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이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연금개혁 초안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회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기윤 국민의힘 간사,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용하, 김연명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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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문위 위원은 “연금특위에서도 자문위 내용을 계속 보고받았는데 갑자기 방향이 바뀐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퇴직연금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특수직역연금 통합 등을 다루는 구조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모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기준이 정해져야 국민연금과 다른 직역연금 간 형평성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의 속도를 올리려다가 정부와 국회의 스텝이 꼬이게 됐고, 보험료율 인상이 이슈가 되면서 여론의 반발을 우려한 국회가 원점 재논의라는 ‘악수’를 둔 셈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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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선 “단일안 내지 못한 자문위가 정치권 부담 키워” 시각도

일각에선 자문위가 단일안을 내지 못해 정치권의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연금개혁 협의체였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해당사자 간 갈등으로 단일안이 아닌 4개의 복수안을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연금개혁에 실패했다. 자문위 내부에서도 복수안을 내면 정치권이 회피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막판까지 단일안을 내려고 했지만 결렬됐다. 자문위 한 위원은 “연금개혁을 정치적으로 풀긴 어려운 문제여서 전문가들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안을 만드는 데 합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위원은 “국회가 구조개혁 등 큰 방향을 제시하고 모수개혁을 비롯한 세부적인 방안은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가 맡아 개혁안을 제출하는 방향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달까지였던 자문위 초안 제출이 이달 말까지로 미뤄지고, 연금특위의 개혁 방향도 바뀌면서 오는 4월 마감 시한이던 연금개혁 초안은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안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개혁안도 오는 10월까지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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