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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하루키처럼 무모한 도전 나서야”‧‧‧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1등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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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9월 7일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투어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평택=고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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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든 준비를 한 다음에 글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루키식(式)으로 무모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사장은 지난 1일 경영설명회에서 6만여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서사가 복잡한 장편 소설도 어떤 결말을 정하지 않은 채 공격적으로 써내려가는 하루키식 작법처럼, 삼성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무모한 도전’을 통해 반전을 노려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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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9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비전 선포 후 3년10개월이 지났지만 삼성의 ‘파운드리 성적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볼 수 없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의 점유율은 60%, 삼성전자는 13%로 나타났다. 두 회사의 격차는 지난해 1분기 39%포인트에서 47%포인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TSMC와 격차 39→49%P로 더 벌어져



경 사장은 이에 대해 “파운드리는 기술 서비스가 핵심인데 그동안 메모리처럼 일했다”며 “올해에도 TSMC가 1등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가 중요한 업(業)의 특성을 간과했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파운드리는 고객 맞춤형 반도체로, 파트너 기업과 신뢰‧소통이 관건이다.

파운드리는 제조사가 갑(甲)이 아닌 철저한 을(乙)이 되는 비즈니스다. 예컨대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 생산방식(OEM) 방식을 연상하면 된다. 화장품 회사가 ‘청량감이 있는 남자 스킨’, ‘잘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 등 콘셉트와 컬러 등을 정해 OEM 업체에 의뢰하면 이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주는 식이다.

업다운 경기 사이클이 뚜렷한 메모리와 달리 꾸준한 성장성과 안정적인 수익성도 특징이다. 시장조사업체인 옴디아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2025년 4773억 달러(약 601조원)로 메모리(2205억 달러)보다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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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보여 온 파운드리 전략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는 아무리 규모가 작은 회사라도 이들이 나중에 커 대형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미래 가능성을 보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을 늘려나간다”라며 “단순히 칩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 입장에서 서비스한다. 하지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는 작은 회사들이 설계도를 들고 찾아가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뚜렷한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약점이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메모리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전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기존 라인을 없애고 새 라인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반복해야 한다”며 “하지만 파운드리는 구형 라인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계속 창출하는 구조다. 삼성은 첨단 라인만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메모리처럼 파운드리 사업을 한 패착이었다.



기술 초격차로 성장 도약대 마련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기반으로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2세대 공정, 2나노 1세대 공정을 통해 고객사를 늘리겠다는 게 기본 구상이다. 이 회장이 강조하는 ‘기술 초격차’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 3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기반으로 한 초도 물량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3나노 공정은 현재 반도체 제조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며 GAA를 적용한 3나노 공정 파운드리 서비스도 삼성이 가장 먼저 선보였다. TSMC는 이보다 늦은 지난해 12월 대만 공장에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3나노 2세대 제품도 내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정기봉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실적 발표 때 “현재 1세대 공정은 안정적인 수율을 나타내고 있다. 3나노 2세대 공정은 2024년 예정대로 양산할 계획이며 현재 다수의 모바일 고성능 컴퓨팅(HPC) 고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나노 1세대 개발에도 집중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며, 응용처를 다변화해 미래 성장 동력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이미지센서(CIS)와 레거시(성숙) 공정으로 불리는 8인치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다. 계열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와 지난해 인수한 키파운드리가 100% 사업을 맡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전체 매출에서 5% 미만으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자동차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수요가 꾸준히 있고 성장성이 있는 분야”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특히 CIS 기술력과 영업력을 키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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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동차용 반도체 등 신시장 진출해야”



전문가들도 삼성이 TSMC보다 앞선 기술력을 검증받고, 다양한 고객을 확보해야 승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고객들에게 기술적으로 TSMC보다 최소 동등 우위에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 작은 기업부터 점차 큰 기업으로 수주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나 CMOS 이미지센서(CIS) 외에 다른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며 “가령 자동차용 반도체(MCU)에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TSMC가 10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박 교수는 “삼성이 사업 기술을 검토해 MCU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며 “이렇게 제품군을 늘려야 팹리스(반도체설계 전문기업) 시장도 열린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파운드리 고객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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