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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지진세 6조 어디에 썼나"…'슬픔→분노'로 바뀐 튀르키예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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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12시간 지나도록 구조대 안 왔다"…

튀르키예 정부 부실한 대응에 분통…

20여년간 걷은 지진세 유용 가능성도 제기…

'장기집권' 에르도안 대통령 정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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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8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주민들이 야외로 피신해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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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3일째에 접어든 튀르키예(옛 터키) 주민들의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사망자 등 인명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지난 20년간 6조원에 달하는 지진세(earthquake tax)를 걷어 놓고도 지진 예방과 대응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AFP통신·BBC·가디언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선 정부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했다. 이번 지진 진앙에서 약 30㎞ 떨어진 가지안테프는 튀르키예에서 피해가 가장 큰 곳이다.

이곳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고 있는 한 주민은 "1분 1초가 중요한데 재난 발생 후 12시간이 지나도록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며 "이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지역 주민들은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붕괴된 건물 곳곳을 맨손으로 뒤지며 생존자를 찾아야 했다.

그동안 튀르키예 정부가 걷은 지진세의 용처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1999년 튀르키예 북서부 이즈미트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1만7000여명이 숨진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세 명목으로 '특별 통신세'를 도입했다. 지각판이 맞물리는 아나톨리아 단층대에 위치해 지진이 빈번한 만큼 이를 예방하고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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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흐라만마라스=AP/뉴시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지진 피해 지역인 카흐라만마라스를 방문해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사망자 숫자가 1만2천 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강추위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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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튀르키예 정부가 거둬들인 지진세는 약 880억리라(약 5조9000억원)에 달하지만, 정작 이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이 때문에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지진세 사용처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무너진 건물 속에 가족들이 갇혀 있다는 또 다른 주민은 "형과 조카가 잔해 속에 깔려 생사를 알 수 없는데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든다"며 "구조 속도가 너무 느려 참다 못한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 들어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십년간 정부가 걷어간 우리 세금은 도대체 어디에 쓰인 것이냐"며 "지진세가 유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내진 설계를 반영하지 않는 건물들도 이번 지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CNN은 "튀르키예는 지진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건축물이 재해를 잘 견딜 수 있도록 지어져야 한다"며 "하지만 튀르키예의 상당수 건물이 내진 기준에 따라 지어지지 않은 데다 노후 건물들은 설계와 시공에 결함이 많아 이번 지진 충격을 버티기 어려웠다"고 짚었다. 가디언도 "이번에 붕괴된 건물 대부분이 1999년 대지진 이후 마련된 건축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노후 건물들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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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지진으로 붕괴된 튀르키예 주거시설/ⓒ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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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최악의 재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는 5월 조기 대선의 결과가 달렸다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9년 대지진, 2001년 경제위기에서 정부 대응이 형편없었다는 심판론을 등에 업고 2002년 권력을 잡은 뒤 20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다.

소네르 차압타이 워싱턴극동연구소 튀르키예연구국장은 "이번 지진이 강력하고 전제적이지만 효율적이라는 에르도안의 이미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지진 관련 행정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재해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대선 전망도 어두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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