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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투기 달라" 유럽 누비는 젤렌스키…러 "런던 거지"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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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주력 탱크 지원을 이끌어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투기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유럽 대륙을 누비며 외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 관영 매체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에 ‘런던 거리의 거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며 조롱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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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영국 런던 스탠ㄷ스테드 공항에서 리시 수낵(왼쪽) 영국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포홍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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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22분(한국시간 오후 7시22분)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안드리 예막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 C-17 군용 수송기를 타고 영국 런던 북부의 스탠드테드 공항에 도착했다. 수낵 총리는 직접 공항으로 마중나가 활주로 앞에서 기다리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프랑스로 날아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동했다. 오는 9일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해외 일정은 지난해 12월 미국 방문 후 이번이 두번째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수낵 총리가 이날 오전 “영국이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표준 전투기 조종법을 훈련시키겠다”고 발표한 뒤 갑작스럽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 메시지가 ‘전투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서방 동맹국들에 전투기 지원을 촉구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을 움직이게 만들었단 분석이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유럽 방문 일정은 온전히 ‘전투기 지원 요청’에 맞춰졌다. 이날 영국 상·하원 건물이 함께 있는 웨스터민스터홀에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곳을 빼곡히 채운 수백 명의 양원 의원 앞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그가 “침공이 일어난 직후, 세상은 아직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내리지 못했을 때, 영국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며 감사를 표하자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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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제이 호일(왼쪽) 영국 하원의장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달받은 조종사 헬멧을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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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는 우크라이나와 우리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가 우리에게 최신 전투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지지) 연합의 새로운 상징이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의 강력한 전투기에 대해 미리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린제이 호일 영국 하원의장에게 우크라이나의 최고 엘리트 전투기 조종사의 헬멧을 전달했다. 헬멧에는 ‘우리에겐 자유가 있다. 자유를 보호할 날개를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앞서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를 방문했을 땐, 바흐무트 전투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이름이 적힌 국기를 선물하며 포와 무기 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버킹엄궁으로 이동해 찰스3세 국왕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거 국왕이 왕립 해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왕은 공군 조종사였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는 모든 공군 조종사가 곧 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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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3세 영국 국왕(왼쪽)이 버킹엄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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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낵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 직후,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에게 “어떤 전투기를 제공할 수 있을지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총리실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고, 총리의 지시는 장기적인 검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수낵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를 훈련시키겠다는 영국의 새로운 약속은, 우크라이나에 첨단 영국 전투기를 제공하기 위한 첫단계일 수 있다”며 “전투기 지원이 (협상) 테이블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낵 총리에게 ‘전투기 제공을 원한다’는 의사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은 “영국은 우크라이나가 지원 요청한 F-16을 운용하지 않으며,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F-35가 현역 전투기”라며 “만약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면, 유로파이터 타이푼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영국은 다른 나라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신호를 줬다”며 “영국이 전투기 지원 약속을 한 건 아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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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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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엘리제 궁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회동했다.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가 중화기와 전투기를 빨리 얻을수록 러시아의 침략이 빨리 끝난다”며 “프랑스와 독일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무기를 지원할 시간은 매우 짧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도울 것”이라고 약속했고, 숄츠 총리는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승리해선 안된다”고 답했다. BBC는 “독일과 프랑스가 전투기 공급을 논의하겠단 의미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특별 정상 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1년 만에 EU 27개국 정상 앞에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알릴 기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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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8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 궁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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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러시아 관영 매체 스푸트니크통신은 유럽 일정을 상세히 보도한 뒤, “키이우의 코미디언이었던 지도자는 해외 방문을 통해 서방 후원자들에게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구걸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런던 거리의 거지”라고 폄훼했다. 주(駐)영 러시아 대사관은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할 경우 유럽 대륙은 물론 전 세계에 군사 및 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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