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한겨울에 ‘스마트한 딸기’ 따는 강남 아이들, 자연과 친해지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강남구, 2021년 11월 세곡동에 177평의 스마트팜 문 열어

딸기·상추 수확체험, 신기술 농법 경험, 재배작물 나눔 진행


한겨레

강남구는 2021년 11월 세곡동 힐링텃밭 옆에 스마트팜을 마련했다. 서울공항에 가까워 소음과 고도 제한이 있는 터에 농업과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시설을 만들었다. 구는 지난해 봄부터 아이들과 주민들이 자연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마트팜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어린이집 4살 반 아이 14명이 체험과 견학에 참여했다. 아이들이 직접 딴 딸기를 맛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이(V) 모양으로 손가락을 가지에 끼워 넣고 딸기를 살짝 잡은 뒤 손목을 꺾으면 예쁘게 따져요.”

지난 3일 오전 강남구 스마트팜 옆 학습 교육장에서 재배관리사 김동하씨가 아이들에게 딸기 따는 방법을 알려줬다. 지역 어린이집 4살 보라반 아이 14명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손을 바라봤다. 김씨는 이날 체험 수업에서 할 딸기와 상추 따기, 물고기와 벌 먹이 주기, 화분에 상추 모종 심기 등을 안내했다.

“자, 그럼 물에서 키우는 상추, 딸기 보러 갈까요?” 김씨가 아이들을 이끌고 식물들이 자라는 스마트팜으로 이동했다. 아직 영하의 날씨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20도가량으로 따뜻하고 환했다. 파릇파릇한 식물의 싱그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뽀얗게 핀 흰 딸기꽃이 딸기향을 솔솔 뿌렸다. 입구 오른쪽엔 상추와 허브가 자라는 재배판(베드)이 16줄, 왼쪽엔 딸기 재배판 4줄이 약 40m 길이로 게 늘어서 있다.

한겨레

한 아이가 잘 익은 딸기를 골라 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속 상추 뿌리를 보려 아이들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뒤에 있는 아이들은 까치발을 했다.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갖가지 허브잎을 만져보고 맛보고 냄새도 맡아봤다. 달콤한 맛이 난다는 아이도 있고 입맛에 안 맞는지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도 있었다. 고사리손으로 장미허브를 만지고 코 가까이 가져간 이채빈양은 작은 목소리로 “냄새 너무 좋다”며 신기해했다. 벌을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김씨는 “열매 맺게 하는 수정벌(뒤영벌)이라 괜찮다”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강남구 스마트팜은 2021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세곡천과 탄천이 만나는 하천 부지에 조성한 세곡동 힐링텃밭 옆에 비닐하우스 2개 동이 이어져 들어섰다. 서울공항에 가까워 소음과 고도 제한이 있는 터를 활용해 농업과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시설을 만든 것이다. 강남구 자체 사업으로 연간 운영예산은 1억2천만원 정도다.

한겨레

스마트팜에서는 상추와 허브를 물고기와 함께 ‘아쿠아포닉스’ 농법으로 키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는 지난해 봄부터 아이들과 주민들이 자연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마트팜을 활용하고 있다. 지역 어린이집과 복지관의 체험 견학, 청년·중장년층의 신기술 농법 경험, 재배작물 나눔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영순 강남구 경제정책팀장은 “도시에서도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친환경 먹거리 재배의 새로운 기술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은 585㎡(약 177평) 규모에 재배공간, 발아실, 아쿠아포닉스, 기계실(양액기 및 제어 시스템)로 이뤄졌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일조량 등을 제어한다. 물고기와 작물을 함께 기르고 수확하는 순환형 수경재배 시스템(아쿠아포닉스)을 갖춘 것도 특징이다. 김동하씨는 “기술, 비용 등의 문제로 일반 농가에서 쉽게 도입하지 못하는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도입했다”고 했다. 김씨는 고창 농업기술센터에서 스마트팜 기술 교육을 마치고 채용된 전문 인력이다.

한겨레

아이들이 둥그런 수조 안 비단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발 받침대에 올라 동그란 수조 안 100여 마리의 비단잉어를 내려다보며 구경했다. “좀 전에 본 상추랑 허브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이 비단잉어 배설물로 공급해요.” 김씨는 설명 뒤에 먹이를 주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이들은 조막손으로 먹이를 한 줌씩 쥐고 던졌다. 비단잉어들이 순식간에 몰려드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조 뒤쪽 양액실을 보고 한 아이가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묻자 김씨는 “딸기나 토마토 등이 빨아먹는 영양액을 만드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양액은 비료를 녹여 만든다. 발아실로 들어간 아이들은 상추씨가 싹틔우는 모습을 관찰했다. “조그마해요”라며 아이들은 심은 지 3~4일 된 싹을 보며 말했다. 김씨는 열흘 동안 자라 긴 뿌리가 나온 모종을 황토볼을 채운 수경 포트에 넣어 재배판으로 옮겨 심는 과정을 보여줬다.

“힐링, 체험 넘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키우려”

스마트폰으로 온습도·일조량 등 제어

물고기 배설물 이용, 순환형 시스템

도심 체험형 리빙랩도 설치할 예정


한겨레

강남구 스마트팜에선 청년과 중장년을 대상으로 신기술 경험 프로그램도 주 1회 운영한다. 재배관리사 김동하씨가 지난 3일 참여자에게 양액 제조법과 기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발아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딸기 재배판의 하얗게 핀 꽃 위로 날아다니는 벌을 만났다. 김씨는 “벌 몸에 묻은 꽃가루 덕분에 수정돼 열매(딸기)가 맺힌다”며 고마운 벌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투명 덮개가 있는 벌통 박스 속 호박벌들에게 꽃가루 먹이를 주는 체험을 했다.

곧이어 4~5명씩 팀을 나눠 상추와 딸기 따기에 나섰다. 아이들은 오목한 그릇을 받고 처음엔 머뭇거리더니 한두 번 해보고는 이내 자신 있게 땄다. 상추와 딸기를 그릇 가득 담은 아이도 꽤 있었다. 포장대에 와서 각자 따온 상추와 딸기를 투명 플라스틱 통에 넣고 매직펜으로 이름을 썼다. 이채빈양은 하트 모양까지 그렸다. “엄마와 아빠에게 자랑할 거예요”라며 “딸기와 상추 따는 것, 물고기 먹이 주는 것, 벌 보는 것 모두 재밌었어요”라고 했다. 박보아양은 “딸기가 새콤달콤 맛있어요”라며 따온 딸기를 플라스틱 통에 예쁘게 담았다.

학습교육장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화분에 상추 모종 심기를 했다. 상추 모종 심기는 올해 추가된 활동이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빨간 화분에 흙을 가득 채우고 상추 모종을 쏙 꽂고 흙을 살며시 눌러줬다. “참 잘했어요”라고 김씨가 칭찬해주자 아이들은 화분을 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 가서 물을 꼭 주세요”라고 김씨는 당부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보라반 김소희 선생님은 “아이들이 물고기와 함께 상추, 허브 등을 키우는 걸 신기해했다”며 “(식물이 자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험해볼 수 있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주 2회 체험 프로그램은 5월까지 예약이 다 찰 정도로 인기다.

스마트팜에선 청년과 중장년을 대상으로 신기술 경험 프로그램도 주 1회 운영한다. 대개 한 명씩 신청받는다. 이날 참여한 한민수(63)씨는 은퇴자다. 텃밭 운영을 해보고 스마트팜에도 관심이 있지만 시설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어 조심스럽단다. 강남구청 누리집에서 신청했다는 한씨는 “스마트팜이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 볼 수 있었다”며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을 보니 절로 힐링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

스마트팜에서 키운 작물은 강남구 푸드뱅크마켓에서 주 2~3회 갖고 가 취약계층에 나눠준다.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 2명이 수확한 쌈채소를 대형 바구니에 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하씨는 한씨에게 아쿠아포닉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일반적인 수경재배와는 달리 물고기 수조와 식물 재배판을 연결한 파이프로 물이 들고 난다. 배설물은 미생물로 분해돼 식물 영양분으로 쓰이고 식물이 질소를 흡수하고 남은 물은 깨끗하게 수조로 돌아와 버려지는 자원이 거의 없는 친환경 농법이란다. 한씨가 양액실에 관심을 보이자 김씨는 양액을 만드는 과정도 알려줬다.

스마트팜에서 키운 작물은 지역 취약계층주민의 밥상에 올라간다.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 2명이 수확한 쌈채소를 강남구 푸드뱅크마켓에서 주 2~3회 갖고 간다. 이날 포장대에서 작업한 60여 개(개당 250g 정도) 쌈채소팩이 대형 바구니에 담겼다. 이영순 팀장은 “푸드뱅크마켓 냉장고에서 자유로이 꺼내 갈 수 있다”며 “친환경 유기농에 부드럽고 맛도 좋아 찾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재배관리사 김동하씨는 “정성 들여 키우는 작물을 눈으로만 봐주면 좋겠다”고 방문객들에게 부탁하며 “작황이 좋아 더 많은 쌈채소를 나눌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힐링텃밭 이용자들이 스마트팜에 와서 재배 방법에 관해 묻는다”며 김씨는 “주민들에게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면 뿌듯하다”고 했다.

강남구는 스마트팜을 힐링과 체험을 넘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도심지 건물이나 유휴지에 소규모 체험형 리빙랩을 설치해 주민, 전문가 등이 함께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모아가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어반 스마트팜 인큐베이팅 혁신센터를 세워 스마트팜 기업, 전문가, 청년 스타트업을 키울 예정이다.

체험형 리빙랩 설치와 인큐베이팅 혁신센터 구축은 조성명 강남구청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조 구청장은 “올해 상반기 혁신센터 조성 사업 타당성 연구용역을 시작한다”며 “도심 속 스마트팜은 주민들이 자연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자 미래 먹거리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적극적으로 육성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누리집] [페이스북] | [커버스토리] [자치소식] [사람&]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