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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국회,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상민 탄핵소추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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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국무위원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긴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탄핵안의 국회 통과로 이 장관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지만, 헌법재판소 심판 절차가 남아있어 실제 탄핵 여부가 판가름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예정이다. 탄핵소추를 주도한 민주당으로서도 심판 결과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 

여야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으로 이 장관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 재적 293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가결시켰다. 탄핵안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지는데 요건을 넉넉히 충족시킨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안을 처리함에 따라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에 소추의결서 정본이 전달되면 바로 탄핵심판 절차가 개시된다. 아울러 행안부와 이 장관에게는 소추의결서 등본이 전달되고, 이로써 이 장관은 직무가 정지된다. 직무정지 기한은 헌재가 심판의 결론을 낼 때까지다.

국민의힘, 탄핵소추안 표결 막으려 30분간 지연작전…179명 찬성으로 가결

이날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표결에 앞서 탄핵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조사를 우선 진행하자고 제안하는 등 탄핵안 처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다수석을 가진 야당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약 30분에 걸쳐 법사위 조사 회부 제안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정쟁과 방탄에 휩싸여서 다수당의 폭거로 국회에서 표결 처리 후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이 된다면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의 권위도 난도질당할 것이고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며 "이런 암담한 미래를 사전에 막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먼저 헌법이 정한 탄핵 요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면서 "법사위로 회부하여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의 건은 심도 있는 법사위의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원내부대표는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이번 탄핵소추안을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는 데 악용하려고 했던 저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언급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이에 송 원내수석부대표도 지지 않고 민주당 의원을 향해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좋다", "반사!"라고 응수하는 등 고성이 오가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지연 작전은 끝내 무위로 돌아갔다. 법사위 조사 회부안은 재석 289인 중 반대 181명으로 부결됐다. 찬성은 106명, 기권은 2명이었다.

반면 과반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의 제안은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당초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을 마친 뒤 이 장관 탄핵소추 건을 상정·심의한다고 공고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탄핵소추건을 대정부질문에 앞서 먼저 상정하자며 의사 일정 변경동의 건을 제안했다. 투표 결과 재석 288명 중 찬성 182명, 반대 106명으로, 탄핵소추 건 처리는 앞당겨졌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서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사유로 △사전 재난 예방조치 의무 위반, △재난대응조치 의무 위반,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부적절한 발언, △국정조사에서의 거짓 진술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2022년 10월 29일 그날 그 장소에서 우리가 못다 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면서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에라도 그 책임을 다했다고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의원은 희생자 159명의 이름을 거명하기도 했다.

탄핵안 표결은 국회법에 따라 무기명 투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재적의원 과반을 훌쩍 넘긴 179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 109인, 무효 5인이었다.

지난 6일 탄핵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 169명 전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의당과 기본소득당 소속 의원 전원, 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을 상황을 고려하면, 야당 내 이탈표는 2~3표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시안

▲김진표 국회의장이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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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헌재의 현명한 판단 기대"…국민의힘, 심판 '지연전술'은 안할 듯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표결 후 기자들과 만나 "당 안에서 특정 현안, 사안에 대해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숙의 과정을 거쳐서 토론을 통해서 입장 특히 당론으로 정해지면 그동안 예외 없이 모든 의원들이 (자신) 입장과 달리 존중해줬다"면서 "그래서 저희 당 의원들이 예외 없이 이상민 장관에 대한 책임을 국민을 대신해서 묻는 것에 동참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를 향해 "헌법 정신,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고 국민의 상식에 입각하고 또한 향후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반드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그런 입장 하에 현명하게 판단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탄핵 인용을 촉구했다.

민주당이 '압도적 가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당 내에서는 여전히 탄핵 추진의 후과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다. 당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법조인으로 가진 식견에 따르면 탄핵 요건이 충족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탄핵이 인용되려면 이 장관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수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혐의는 없다. 탄핵안이 기각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법조인 출신인데도 완강하게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될 것이라 주장하는 의원들도 많은데, 사법시험 보거나 로스쿨 다닐 때 헌법 교과서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것 같다"며 "박홍근 원내대표가 '정치적으로 불리해도 어쩔 수 없다' 했는데 납득이 안 된다. 그럼 탄핵을 하지 말아야지 왜 하느냐"고 비판했다.

행안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정부 여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표결 후 기자들과 만나 향후 대응 방침에 대해 "어떤 대응이 필요하겠느냐"면서 "비록 탄핵소추결의는 했지만 그 문제는 헌재가 헌법에 따라서 제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보고, 우리 시급한 민생현안들, 여러 법안 처리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2월 (임시국회) 보이콧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 본회의 가결 직후 규탄대회를 열고 민주당 등 야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의 의회폭거"라며 "국민이 부여한 의회 권력을 남용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반헌법적 억지 탄핵소추안에 국민의힘은 깊은 유감을 표하며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기본적 사실관계는 물론 판결문의 선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민주당의 막무가내식 이재명 방탄을 위한 행태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송 원내수석부대표의 제안 설명 과정에서 엿보인 것처럼, 국민의힘 등 여권이 지연 전술로 탄핵심판에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탄핵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는 탄핵소추위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맡아야 하고, 헌재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법사위원장은 이날 <중앙> 인터뷰에서 "늦춰봐야 장관 공백기만 길어질 뿐이다. 늦출 필요가 없다", "신속하게 결론을 보는 게 중요하다"며 심판 일정을 지연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자신이 장으로부터 탄핵소추안 정본을 제출받아 헌법재판소에 송달해야 하지만 법문상 딱히 기한의 정함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출 기한이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이같이 답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소추인단·대리인단 구성은 내 재량"이라며 "소추인단 구성은 안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소추위원으로서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옳지 않다"며 탄핵 찬반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소추인단 구성을 생략하고 국회 측 법률대리인도 법사위원장 재량으로 임명하겠다는 답변은 그의 내심을 일부 시사한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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