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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알뜰폰 판 커지자 정부 지원 놓고 공방 본격화… 지원 필요 vs 자율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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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알뜰폰 스퀘어 매장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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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도매대가’ 관련 규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때 알뜰폰 업체들이 통신 3사에 지불하는 망 사용료를 도매대가라고 부른다. 통신 3사 중에서도 SK텔레콤은 알뜰폰 업체에 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돼 있고, 정부는 알뜰폰 업체를 대신해 SK텔레콤과 3년에 한 번씩 가격 협상을 한다. ‘3년 일몰제’는 그간 세 차례에 걸쳐 연장됐다.

그동안 국회에는 이 제도와 관련한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일몰제를 없애고 통신사들이 영구적으로 알뜰폰 사업자들에 도매제공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들은 정부와 업계 간 찬반양론이 팽팽해 신중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이유로 계류돼 있는데, 최근에 정반대의 법안이 발의됐다. 일몰제를 없애되 통신사들의 도매제공 의무도 없애고 시장에 맡기자는 내용이다. 국회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알뜰폰 관련 법안은 세 가지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년의 일몰 기한을 없애자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통신사들이 영구적으로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도매제공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도 이런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김영식 의원의 법률안에는 도매제공 의무를 KT와 LG유플러스까지 확대하고, 3사의 알뜰폰 자회사 숫자를 제한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양정숙(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도매대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나 통신 3사 알뜰폰 자회사의 시장 점유율을 50%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한 상황에서 최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에 발의된 법안과는 상반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통신사의 도매제공 의무를 없애되 시장 자율에 맡기자는 것이다. 대신 정부의 사후 검토 과정을 둬서, 대가 인상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이 포함된 경우 이를 시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모두 다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기존 규제를 손질하자는 취지는 같다. 도매제공 의무사업자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이 나뉘는 것은 물론, 현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당 법안 적용 대상은 기존 통신업계 점유율 1위인 SK텔레콤뿐이다. 하지만 SK텔레콤 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가입자는 약 238만명으로 KT 636만명, LG유플러스 371만명에 비해 적은 편이다. SK텔레콤이 아닌 KT나 LG유플러스에 규제를 가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김영식 의원의 개정안도 이런 내용을 반영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간 입장이 모두 달라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상황이라 대부분의 법안은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사들이 영구적으로 알뜰폰 사업자들에 도매제공을 하도록 하자는 내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도매제공 의무가 사라질 경우 자본력과 협상력이 낮은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투자 위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부는 김영주 의원의 법률안과 관련, “이동통신 경쟁을 촉진하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현행 도매제공의무제 유지가 필요하다”며 “알뜰폰 시장 규모 자체는 성장했지만 매출액은 여전히 전체 이동통신 시장 대비 5%에 불과하다”고 했다. 도매제공 의무제가 없어지면 도매제공의무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업체에 도매제공을 하지 않거나 일부 서비스만 도매로 제공할 수 있는 상황도 우려했다.

알뜰폰 업체들도 도매제공 의무가 상시화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유효기간이 3년마다 연장되고는 있으나 도매제공 의무제가 사라지면 알뜰폰 사업자들은 존속하기 어렵다”며 “투자비 회수가 장기간 소요되는 설비투자 등을 진행할 수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윤영찬 의원이 낸 법안은 과기부가 냈던 의견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알뜰폰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장 자율 환경에서 자체적인 경쟁력과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윤 의원의 주장이다. 알뜰폰 업체들이 정부 지원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서비스가 뒤처진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봤을 때 도매제공 의무가 유지된다고 해서 알뜰폰 사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알뜰폰 업체들이 의무 제공에 편승해 살아남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법안들이 불과 반년도 안 된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도매제공 의무제도는 실효성과 부작용을 모두 보여준 데다 10여년 전 알뜰폰이 처음 도입될 시기의 통신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손봐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변지희 기자(z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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