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도쿄선언 40주년, 반도체 위기의 삼성… 이재용에 쏠린 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1985년 경기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고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사(史)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되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이 8일 40주년을 맞았다. 1983년 2월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수일간 잠을 설치며 고심을 거듭한 이병철 회장은 서울에 있는 홍진기 중앙일보 사장에게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할 것이니 이를 공표해달라”고 전했다.

삼성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산업사의 남을 ‘2.8 도쿄선언’이었다. 한 달 뒤 주요 언론에 ‘우리는 왜 반도체 산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선언문이 실렸고,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 전 세계적으로 공식화됐다. 당시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직접회로(LSI) 생산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기술력이 열악한 시기였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신념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온 삼성전자는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에 올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맹주에 오른 것이다.

◇ 급변한 세계 반도체 시장…공룡들에 찾아온 빙하기

이건희 회장이 2020년 타계한 이후에도 삼성의 과감한 투자와 초격차 기술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으며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2021년에는 기존 계획에 38조원을 더해 총 17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전례 없는 위기의식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메모리 업황 악화로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96.9% 급감하며 적자를 겨우 면했다. 반도체 사업별 세부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점을 고려하면 주력인 메모리는 적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비즈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경쟁사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던 최첨단 미세공정 기술력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최근 5~6년간 메모리사업부의 R&D 효율성, 중장기 로드맵, 시장수요 예측 등 모든 핵심 전략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며 D램,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에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와 경쟁하며 세계 최선단 공정인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양산 기술을 확보했지만 대형 고객사들을 줄줄이 놓치면서 사업 전략의 비효율성, 수익성 문제를 겪고 있다. 삼성 내 유일한 반도체 설계전문 조직인 시스템LSI사업부도 자체 브랜드인 엑시노스 시리즈가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성능 측면에서 열세를 나타내며 칩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혁신모델 절실해진 삼성, 올해가 조직쇄신 골든타임

물론 이는 삼성전자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종합반도체기업(IDM)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인텔도 최근 수년간 비슷한 위기를 경험했다. IDM이란 제품 설계부터 생산, 영업 등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기업을 말한다. IDM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설계, 제조, 후공정 등 직접 포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과 시장 창출, 점유율 확대에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대규모 디지털 센터, 전기차, 사물인터넷(IoT) 등 다변화되고 정보기술(IT) 산업은 더 빠르고 민첩한 시장 대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트렌드 변화에 IDM보다는 빠른 설계로 시장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팹리스(설계전문기업)의 입지가 더 유리해졌고, 팹리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와 보조를 맞춰 오롯이 제조 역량에만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는 파운드리(위탁생산)의 미세공정 기술력과 제조 전문성이 IDM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IDM 모델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삼성 반도체의 세 사업부를 통합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기업이지만, 세 사업부는 각국의 글로벌 강자들과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부는 자사보다 R&D 연구인력이 3배가 넘는 TSMC를 경쟁 상대로 인력, 규모, 투자 모두 뒤처질 수밖에 없으며 설계 분야에서 시스템LSI 역시 설계인력이 2~3배 더 많은 퀄컴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IDM 2.0은 인텔이 설계, 제조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만들기 위해 발표한 개념이다. 과거처럼 모든 영역에서 시장 기술을 선도하기 어려워진 만큼 이제는 ‘인텔이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며 협력 생태계 구축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인텔은 반도체 업계에서의 높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반도체, 설계, IP, 소프트웨어 기업이 참여하는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메모리사업부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설계, 제조, 시장예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삼성전자가 취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과거 황창규, 진대제, 권오현 회장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가 이끄는 방식 대신 최근 인텔이 시도하고 있는 시스템적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며 이재용 회장 말고는 이를 전적으로 주도할 인물이 없다”고 설명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