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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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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된 '중대처벌법', 고용부마저…'산안법' 개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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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올해 첫 '현장점검의 날' 실시

50인·50억 미만 제조·건설업 대상

처벌 대신 노사 자기규율 중심 '위험성평가' 점검

"올해 위험성평가 단계적 의무화"…산업법 개정 추진

"시행 1년 중대처벌법, 두지도, 폐기도 못 해"

"계륵된 '중대처벌법', '중대예방법'으로 법명 바꿔야"

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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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년 만에 계륵이 될 상황에 놓였다. 정부가 사망 등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올해부터 사업장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을 추진하면서다. 처벌 중심의 중대처벌법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는 일단 산안법부터 손 보기로 했다. 중대재해 예방에 실효성이 없는데다 기존 산안법으로도 대응이 가능한데 정부로서는 이미 시행에 들어간 중대처벌법을 폐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처음 '위험성 평가' 중심의 현장 점검을 실시한다고 8일 밝혔다.

주요 점검 요인은 추락·끼임·부딪힘 등 3대 사고 유형의 8대 위험 요인(지붕·사다리·고소작업대·방호장치 등)과 위험성 평가 이행의 적정성 여부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노사 자율로 파악하고, 부상·질병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사업장이 위험성 평가를 시행했는지, 사고·산업재해를 위험성 평가에 반영했는지 여부다. 또, 근로자를 참여시켰는지, 위험성 평가 결과를 근로자에게 공유·전파했는지 등도 기준이 된다.

지난해 고용부는 처벌 위주에서 '자기규율 예방 체계' 중심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용부는 올해부터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산안법 개정을 추진한다. 위험성 평가 과정에 근로자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도 개정한다.

이는 처벌 중심의 중대처벌법을 둘러싼 노사 간, 여야 간 이견이 큰 상황에서 자율과 예방 중심의 기존 산안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부담을 덜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대처벌법 도입 전, 당초 고용부는 중대재해 발생 시 과징금 부과 등 기존 산업법의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정을 검토해 왔다.

산업법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산업재해 발생 시 처벌보다 예방 의무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으로는 중대재해에 따른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묻기 어렵고, 처벌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개입하기 시작했고, 경영계와 노동계도 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기존 법의 개정이 아닌 중대처벌법 제정이 이뤄지게 됐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이 대상이다. 법 위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기존 산업법과 비교하면 예방보다 처벌에, 현장 책임자 보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중대처벌법 제정 후에도 산재 감축 효과가 없고, 모호한 처벌 기준으로 현장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난도 거세다.

중대재해를 예방한다는 법적 취지와 달리 지난해 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 건수는 611건, 총 64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특히, 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256명이 사망했는데 전년(248명)보다 되레 8명(3.2%) 증가했다.

특히, 중대처벌법 도입 후 기소된 기업들은 많지만 대부분 수사 중이고, 처벌된 사례는 없어 현장에서는 사실상 '사문화'된 법으로 여기고 있다.

고용부의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지난해 중대처벌법 시행 이후 법 적용 대상 사건은 총 229건, 현재까지 처리된 사건은 52건(22.7%)에 그쳤다. 이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34건,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뿐이다. 나머지 117건은 수사 중이다.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고용부는 산업법 등 법령 체계를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류경희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처벌법 뿐 아니라 산안법이나 여러 규칙을 이번 기회에 위험성 평가 중심으로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현재 중대처벌법 개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법 보완 등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만, 중대처벌법 개정에는 시일이 걸려 우선 기존 산안법부터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계륵이 돼 버린 '중대재해처벌법'을 '중대재해예방법'으로 법명부터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처벌 대신 예방이란 용어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산재 예방이란 법적 취지는 살리면서 처벌 위주란 부정적 인식도 줄일 수 있다"며 "고용부도 이 법이 사업주 처벌보다 사고 예방에 초점을 둔 법이라고 밝힌 만큼 법명 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안법을 통해 일반 중대재해를 처벌하고, 중대처벌법은 그 중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를 가중처벌 하는 등 산업안전법령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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