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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경쟁자에게 '영업 비밀'까지 아낌없이 전수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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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보다 값진 아름다운 우정...올림픽에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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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물론 승리입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정은 있습니다. 정정당당, 최선을 다해 임한 경기에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할 때, 아름다운 경쟁, 아름다운 승리가 비로소 실현됩니다.

바심과 탬베리, 109년 만의 올림픽 공동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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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공동 금메달을 획득한 탬베리·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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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금메달 확정 순간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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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는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한국의 간판스타 우상혁 선수가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해 엄청난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종목 우승 후보였던 바심과 탬베리는 나란히 2m 37을 1차 시기에서 넘었습니다. 2m 39에 도전했지만 3차 시기까지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후 경기 감독관이 두 선수를 모아놓고 의사를 물었습니다. 이른바 '끝장 승부'로 메달 색깔을 가릴 것인가? 이 질문에 바심이 먼저 그냥 공동 금메달은 안 되냐고 되물었습니다. 감독관은 두 선수 모두가 동의를 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탬베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공동 금메달이 탄생하는 순간 두 선수는 서로 얼싸안으며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올림픽 육상에서 공동 금메달이 나온 것은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 109년 만이었습니다. 두 선수는 라이벌이자 절친으로 유명했는데,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브로맨스'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 인종을 넘어선 아름다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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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 제시 오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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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 멀리뛰기에 출전한 오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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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경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1930년대 독일 총통 히틀러가 아리안족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흑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이때 미국 육상에 천재가 나타났는데요.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였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오언스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멀리뛰기 예선에서 두 번이나 구름판을 잘못 밟아 실격 위기에 놓였습니다.

한 번만 더 잘못하면 바로 실격돼 탈락이었던 그 순간에 그에게 한 백인 선수가 다가왔습니다. "발 구름판을 넉넉히 10cm쯤 뒤를 밟으세요. 그래도 당신 실력으로는 충분합니다." 조언을 건넨 선수는 바로 1차 시기에서 이미 세계기록을 세운 독일의 루츠 롱이었는데요, 오언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습니다. 오언스는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한 뒤 도약해 예선을 통과했고 결국 결승에서 8m 6cm를 뛰어 금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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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뛰기 시상식...제시 오언스(가운데), 루츠 롱(오른쪽), 나오토 타지마(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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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루츠 롱은 19cm 뒤져 은메달이었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된 오언스의 손을 먼저 잡고 높이 들어 관중에게 인사를 시킨 것도 루츠 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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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대화를 나누는 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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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계주와 멀리뛰기 등 4관왕의 신화를 쓴 제시 오언스는 "내가 가진 모든 금메달을 녹여도 루츠 롱의 우정을 금빛으로 칠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당시의 감격을 회상하기도 했는데요, 두 선수가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던 모습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겼고 베를린올림픽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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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멀리뛰기 시상식에 참석한 후손들 왼쪽부터 루츠 롱의 아들, 루츠 롱의 손녀, 디아크 당시 국제육상연맹 회장, 오언스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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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3년이 지난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오언스의 손녀와 루츠 롱의 아들이 멀리뛰기 시상식에 나란히 나와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육상 10종 경기, 한 아시안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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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육상 스타 양추안광


육상 남자종목 중에 10종경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100m, 높이뛰기, 멀리뛰기, 장대높이뛰기, 투포환 등 10가지 경기를 겨뤄 합산 점수로 메달을 가리는 종목입니다. 스피드와 파워를 모두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아시아인에게는 정말 어려운 종목이었지요.

그런데 1950년대 아시아에서 걸출한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바로 1954년과 58년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금메달을 차지한 타이완의 양추안광입니다. 타이완 정부는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내다보고 육상의 본고장, 미국 UCLA 대학으로 그를 유학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양추안광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가자니 걱정이 태산 같고 안 가자니 절호의 기회를 날리는 것 같아 주저했지요. 양추안광은 간신히 용기를 내 혈혈단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그의 어깨를 탁 치며 인사하는 선수가 있었는데요, 당시 세계 정상급 스타로 흑인인 미국의 레이퍼 존슨이었습니다.

편견과 외로움 아래 만난 두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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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레이퍼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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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추안광, 레이퍼 존슨. 이 두 선수는 2년 전 멜버른 올림픽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더키 드레이크라는 유명한 코치 아래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는데요, 기량으로만 보면 두 선수는 2년 뒤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툴 후보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에게는 저마다 아픔이 있었습니다. 양추안광은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지요. 미국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3끼 모두 '비프 스테이크'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관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이퍼 존슨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극심한 인종 차별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동병상련이었을까요? 팀 동료가 된 두 선수는 곧 친구가 됐습니다. 존슨은 주말이면 양추안광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고 손짓, 발짓해가며 영어도 가르쳐줬습니다. 존슨은 "너의 영어 수준이 내 중국어 수준이다"는 농담까지 하며 언어의 장벽을 우정으로 극복했습니다.

경쟁을 넘어선 우정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신장 180cm인 양추안광은 달리기와 도약 경기에 강한 반면 투포환, 투원반 등 투척 경기에 약했습니다. 키 190cm의 거구인 존슨은 양추안광과 정반대였지요. 아무리 팀 동료지만 조만간 올림픽 금메달을 다툴 경쟁자에게 자신만의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자신이 강한 종목의 노하우를 서로 교류하며 부족한 점을 상호 보완했습니다. UCLA 대학에서 2년 동안 함께 훈련한 두 선수는 마침내 1960년 9월 로마 올림픽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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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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