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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자수첩] 신뢰 회복 고민하는 코인업계, 사기 근절 노력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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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정수 금융부 기자




유명했던 스캠꾼(사기꾼)들은 여기 다 모였다. 한 때 보는 눈이 두려워 사람들을 피해다니더니 이젠 좀 잠잠해지나 싶으니 다시 한 몫 챙기려고 나온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판치고 다닌다면 이 업계의 미래는 없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한 블록체인 커뮤니티 행사에서 만난 한 가상자산 분석업체 대표 A씨는 주위를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정 인물 몇몇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이 얼마나 블록체인 업계에 큰 피해를 끼쳤는 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그들이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느꼈다면 이곳에서 버젓이 명함을 돌리고 있어선 안 된다”며 “저런 사람들 때문에 가상자산 업계가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년간 수익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 거래소들이 독버섯을 알고도 방치해 업계 전체가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캠이란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를 뜻한다. 대개 스캠은 코인 개발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은 다음 갑작스럽게 잠적하거나, 일정 수익을 지급하며 거액의 금액을 요구한 후 돈을 받으면 사라지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수법만 보면 일반적인 금융 사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코인의 경우 피해자들이 속아 넘어가기 더욱 쉽다. 일단 시장에 공개된 정보가 다른 금융 시장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고, 개념 자체가 어렵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캠꾼들이 정보를 조작하거나 제대로 작정하고 ‘설계’에 들어갈 경우 평범한 투자자들이 이를 알아차리기는 것은 쉽지 않다.

코인 스캠 피해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전 세계적으로 코인 사기로 발생한 피해액은 4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만 따져도 4조6000억원에 이른다.

피해 규모는 날로 커지지만, 현행법상 스캠꾼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가상자산 사기 수법은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는데, 이를 단죄할 근거가 되는 가상자산 관련 법과 제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아 계속해서 스캠꾼들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금융 당국이 각종 스캠 행위에 대해 제대로 감시하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상자산 업계에선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하는 스캠꾼들도 많다. 과거 다단계 코인 불법 영업으로 큰 수익을 얻은 사람들이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는 이야기도 업계에선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가상자산 관련 사기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코인 스캠을 저지르는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 P2P 대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서 사기를 일삼은 전력이 있다”며 “법이 강화돼 이전 방식으로 돈을 벌기 어려우니 규제가 미비한 코인 시장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을 다루는 법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 같은 스캠꾼들을 마냥 방치하는 것은 가상자산 업계 전체의 직무 유기에 해당된다. 특히 가상자산 시장이 생겨난 이후 수 년 간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던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과연 지금껏 판을 치는 스캠을 근절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 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로 약 77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투자 피해가 발생해 가상자산 업계가 국민적인 지탄을 받자, 거래소들은 부랴부랴 연합체를 구성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

테라·루나 사태에 대한 사후 대응과 위믹스 코인의 상장폐지 사태,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 등 가상자산 업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거래소들은 한 목소리로 “국민들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정작 가상자산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각종 사기를 뿌리 뽑는데 대해서는 거래소들이 어떤 자정 노력을 하고 있는 지 여전히 들리는 소식이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가상자산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기꾼이 판을 치는 시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시장 전체가 아직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단 물을 흐리는 스캠꾼들 뿐 아니라 이들을 걸러내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업계 전체에 책임이 있다.

법과 제도가 갖춰지기 전 스스로 앞장서 스캠을 근절하는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정수 기자(essenc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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