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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지구 최후의 날 같은 광경”… 손전등·맨손으로 매몰자 구조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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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도 더… 필사의 구조 노력

새벽의 강진으로 3만명에 육박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에서 필사적인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과 경찰, 공무원으로 이뤄진 구조대 2만6000여 명을 투입했다. 내전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시리아 북부에서는 난민 구호 활동 중이던 비정부 단체(NGO)들이 정부를 대신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미국 CNN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돼 마치 ‘아마겟돈(지구 최후의 날)’ 같은 광경이 펼쳐진 와중에 손전등과 맨손에 의존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긴박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진앙(震央)에 가까워 피해가 집중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와 오스마니예, 아다나 등 주요 도시에서는 7일(현지 시각) 영하로 떨어진 날씨 속에 이틀째 구조 작업이 계속됐다. 이날 새벽 영하 6도까지 떨어졌던 가지안테프의 기온은 낮에 영상 4도까지 올랐으나, 8일부터는 대낮에도 영하의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이로 인해 구조 작업이 본격화해도 저체온증으로 인한 매몰자의 사망 사례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일부 붕괴 현장에는 건물 잔해를 치우기 위해 굴착기 등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으나, 수천여 명에 이르는 매몰자 확인이 늦어져 섣불리 작업에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는 “앞으로 24시간이 사실상 골든 타임”이라며 “8일 새벽부터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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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각)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더미 속에서 온몸이 갖힌 시리아 어린 소년이 눈을 깜박거리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The tele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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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붕괴 현장 주변에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실종자 가족들, 사망한 자녀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 등 안타까운 장면도 나오고 있다. 이재민 대부분이 근처 대피소로 이동했지만, 시설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카라만마라슈 등에서는 잠옷 차림의 주민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담요를 걸친 채 추위를 견디는 모습이 TV 전파를 타기도 했다. 튀르키예 중앙 정부가 보낸 구호 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지진으로 현지 도로망이 피해를 보면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6일 오후 규모 7.5, 7일 새벽 규모 5.3 등 규모 4.0이 넘는 여진만 109건 발생하면서 이재민들의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BBC방송은 “주민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여진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구조 작업에 차질을 빚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도시인 가지안테프에서는 2000년 역사의 성벽이 무너지고 망루 곳곳이 파손됐다. 17세기에 지어진 시르바니 모스크의 돔과 동쪽 벽 일부도 무너졌다.

시리아 북부 지역의 피해 상황은 더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전으로 인해 사회 기반 시설이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에서, 구호 단체의 도움으로 연명해 오던 난민들이 무방비로 지진에 노출됐다. 시리아 국영 사나(SANA)통신은 “부실한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하면서 잠자던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경우 등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의료 구호 단체 ‘메드 글로벌’은 “정전으로 어두컴컴한 거리에 골절과 심각한 부상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의료용품이 부족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피해 현장에서는 흰색 헬멧을 쓰고 활동하는 구호 단체 ‘시리아 시민방위대’가 시리아 정부를 대신해 구조 및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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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 지역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5세 소녀가 구조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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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2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13일까지 휴교령도 내렸다. 주요 외신들은 “고물가와 경제 악화로 민심을 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5월 조기 총선으로 이를 돌파하려 했으나 대지진이라는 돌발 악재를 만났다”고 평가했다. 지진 여파로 튀르키예 남부 제이한 항구 터미널을 통한 이라크와 아제르바이잔 등 주변국의 원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세계 경제에 악영향도 우려되고 있다. 원유 공급 불안 우려로 6일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1%(72센트) 오른 배럴당 74.11달러를 기록했다. 이번 지진에 따른 튀르키예의 경제적 손실이 최대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튀르키예 리라화는 6일 달러당 18.83리라에 마감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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