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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야생미 뿜뿜 ‘몸의 대결’… 예능 한류 불씨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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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피지컬: 100’ 글로벌 흥행

상금 3억 걸고 ‘최고의 피지컬’ 경쟁

성별·종목·체급 제한 없애고 단순화

장호기 PD “해외 시청 접근성 고민

룰·선수 디테일 등 불필요한 정보 빼”

현실판 ‘오징어 게임’… 국내외서 화제

전문가 “올림픽 관전 포인트와 비슷”

첫 게임 세트장만 ‘축구장 2개’ 크기

세계 겨냥한 물량 공세도 인기 한몫

“인간의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쓴 고통의 역사이자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 지금부터 그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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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피지컬: 100’이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제작 예능으로는 드물게 글로벌 TOP10 TV쇼 부문 상위권에 오르는가 하면, 해외에서 나라별 버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 드라마에 이어 예능 분야 ‘한류’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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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음악과 함께 비장미 넘치는 내레이션이 깔리고,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토르소가 즐비한 공간으로 카메라가 향한다. ‘최고의 몸 찾기’를 위한 서바이벌을 내세워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피지컬: 100’(포스터)은 거창한 설명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나오는 장면은 거창한 철학보다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참가자는 상의를 벗어 던진 채 터질 듯한 근육을 뽐내며 싸움을 벌이고, 동물 우리 같은 경기장 위 전광판에는 게임의 룰과 생존자 숫자와 이름이 위화감이 들 만큼 크게 노출된다. ‘오징어 게임’과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한다.

몸싸움이라면 어디서도 밀리지 않을 참가자들이 ‘상금 3억원’에 혈투를 벌인다는 자극적인 전개에 국내외 반응은 폭발적이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쇼(비영어) 부문에서 33개국 TOP10에 오른 데 이어 3, 4화가 방영된 이후에는 글로벌 4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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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에서 몸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 예능은 꾸준히 있었지만 ‘내수용’이었다. ‘강철 부대’나 ‘더솔저스’ 등 이른바 ‘밀리터리 예능’이 대표적이다. ‘피지컬: 100’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단순화했다. 성별, 종목, 체급 등 어떤 것에도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다. 조건은 ‘오직 몸’. 특정 종목이나 조직과 그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없으니 모든 국가에서 소비하기 좋은 프로그램이 탄생한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 같은 토르소와 아름다운 몸, 그들이 펼치는 경쟁 등 모든 요소가 올림픽 관전 포인트와 같다”며 “몸은 다 똑같다는 전제로 직관적인 경기를 벌이는 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인기를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단순화한 기획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의외성도 한몫했다. 매달리기와 공 뺏기, 모래 빨리 옮기기 등 근력, 지구력, 순발력을 다양하게 시험하면서 우승후보로 꼽히던 거구가 탈락하고, 최약체로 꼽히던 여성팀의 선전이 이어지며 시선 잡기에 성공했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 종주국 한국이 만든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라는 것도 해외 시청자 사이에서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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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이 성공하며 드라마에 국한됐던 ‘K콘텐츠’가 예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나라별로 웃음 코드와 문화적 경험이 다른 만큼 ‘국경 넘기’가 쉽지 않았다.

‘피지컬: 100’은 애초에 세계시장을 겨냥해 기획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월드 콘서트와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유재헌 미술감독, ‘오징어 게임’ 김성수 음악감독, 영화 ‘기생충’ 최세연 의상감독 등이 참여하고, 4000명이 넘는 스태프와 150∼200개의 카메라가 투입되는 등 ‘글로벌 예능’에 방점을 찍었다. 첫 게임 세트장 크기만 축구장 2개 규모.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무릎이 나갈 정도”라는 엄살이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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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 공세의 결과는 성공.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호기 PD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시청자였지만, 전 세계 시청자에 어떻게 문화적·정서적으로 이해될지에 대해 고민했다”며 “자막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게임의 룰에 대한 디테일과 선수에 관한 디테일 등 불필요한 정보는 다 뺐다”고 말했다.

강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의 강점이 대자본을 기반으로 스케일이 큰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국내에서는 초기에 ‘YG 전자’나 해외에서 비교적 반응이 좋았던 ‘런닝맨’과 유사한 포맷으로만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이제 4∼5년의 노하우가 쌓여서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예능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전슈퍼모델’이나 ‘마스터셰프’처럼 ‘피지컬: 100’이 나라별 시리즈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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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인기만큼 논란거리도 뒤따르고 있다. 공개 초반에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도마 위에 올랐고, 3화에서는 성(性) 대결 과정에서 남성 참가자가 여성 참가자의 가슴을 무릎으로 누르는 장면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장 PD는 “촬영을 하며 예상을 깨는 결과들이 많이 나와 나 역시 몸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프로그램을 떠나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도 우리에게 편견이 많았다는 측면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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