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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시진핑 통제 안 먹히나… 中 군부, ‘스파이 풍선’ 날린 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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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알았나” 美분석가들, 3기 연임 시작한 시 주석의 리더십에 의문

알래스카에서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 8일간 미국 영공을 횡단한 중국의 ‘스파이’ 풍선은 지난 4일 미 공군의 F-22 랩터 전투기가 발사한 한 발의 에임(AIM)-9X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에 격추됐다.

하지만 2월5~6일로 예고됐던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訪中) 계획을 앞두고 불거진 이번 사건은 중국 지도부 내 의사결정 구조와, 3연임을 시작하며 미국과 관계 개선을 꾀했던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고 서방 분석가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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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의 카터 홀 함의 지휘관이 지난 4일 중국의 '스파이' 풍선 잔해가 떨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바다를 관찰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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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작년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인도네시아의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합의한 것이었다. 중국 측은 블링컨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에서 돌파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상 유지’의 여건은 조성되기를 기대했다. 1월 18일 중국 외교부는 블링컨 방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열흘 뒤인 1월28일 미국 알래스카 영공에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 목격됐고, 결국 블링컨은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시진핑은 3기 국가주석 직을 시작하면서 크게 두 가지 정책 전환을 추구했다. 하나는 경기에 심각한 폐해만 초래했던 ‘코로나 제로’ 봉쇄 정책을 풀어 국내 불만을 달래고 경기 회복을 꾀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작년 경제성장률은 3.0%로, 1976년 이래 두번째로 낮았다.

시진핑은 또 대미 관계를 개선해, 갈수록 공고화하는 미국ㆍ유럽ㆍ아시아 국가들의 반중(反中) 동맹과 미국의 강력한 대(對)중국 반도체 부품ㆍ장비 수출 통제 정책을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자이안 총 교수는 CNN 방송에 “중국 지도부는 블링컨의 직접 대화를 기대하고 있었고, 시진핑으로선 이 방문이 이뤄지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시점에 ‘스파이 풍선’을 날려 보냈는지에 대해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7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계는 시진핑 정부와 안보 담당 기구 내 의사소통과 통제가 일관적이지도 못하고, 기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6일 “이번 사건은 하나의 잘못된 움직임이 우발적 충돌로 번질 수 있는 국제정치적 기류에서 중국이 어떻게 파워를 행사하는지에 대해 우려를 초래한다”며 “중국의 풍선 논란으로 시진핑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작년 10월 3연임을 시작했지만, 시진핑은 적지 않은 국내외 거센 비판에 몰렸다.

제로 코로나를 강요하다가 광범위한 시위와 저항에 부딪혀 결국 취소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의 “제한 없는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홍콩ㆍ신장위구르 지역에 대한 탄압적인 조치로 서방의 반목을 샀다. 그러더니 ‘스파이’ 풍선 사건까지 일어나, 대미(對美) 관계 해빙(解氷)의 기회마저 놓쳤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副)차관보를 지냈고 현재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교수인 수전 셔크는 “시진핑이 권력의 정점(頂點)에 있어야 할 이 때에 이런 일련의 부정적 피드백(feedback)을 받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의 긴장 구도 원하는 중국 군부

일부 전문가들은 미ㆍ중 관계 회복을 막으려는 중국 군부의 ‘의도’에 주목한다. 인민해방군(PLA) 지도부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스파이’ 풍선 날려보내는 일을 당 지도부와 사전에 조율했는지, 아니면 양국 관계를 해빙하려는 시진핑의 노력을 저해하려 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스쿨 교수인 드루 톰슨은 “시진핑이 모르게 이뤄졌다면 이런 것을 예방하려는 국가안보 조율 과정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MIT의 안보연구프로그램 디렉터인 테일러 프러벨 교수는 “중국 지도부가 만약 풍선이 미국으로 가는 것을 알았다면, 블링컨의 방문을 앞두고 사전에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기구를 날려 보낸 중국 국방부는 발견 시 초래될 정치적 낙진(落塵)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했거나, 외교적인 일정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들의 장기 플랜을 집행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또 중국의 관료주의가 전세계로 날려 보낸 이런 고(高)고도 열기구(熱氣球)의 위치 추적에도 실패하고, 언제 어디서 ‘불가항력’적으로 의도치 않게 나타날지 예고조차 없을 정도로 방만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남미의 콜럼비아도 지난 3일 자국 영공에 나타난 중국 풍선을 발견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6일이 돼서야 “날씨와 자기(自己)조종 능력 제한 탓에, (중국) 비행선(airship)이 계획된 코스에서 훨씬 벗어나 남미와 카리브해 영공으로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서방 분석가들이 시진핑의 리더십과 더불어, 중국 군부의 ‘저의’에 주목한다. 이런 풍선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미사일 부대인 로켓군이 운영한다. 타이완에서 종종 발견되는 진짜 대기관측용 풍선도 PLA의 로켓군이 보낸다.

중국 군부는 역사적으로 미국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다. 중국 군부는 2011년 1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당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기 불과 수시간 전에, J-20 스텔스 전투기의 첫 테스트 비행을 공개했다.

게이츠가 후진타오를 만나 J-20 테스트 비행 사실에 대해 물었지만, 후진타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론 후진타오는 시진핑처럼 권력이 강력하지 못했다. 당시 서방에선 중국 군부가 게이츠의 방중을 방해하려고 테스트 비행 시점을 정했고,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국방력 차이를 좁히려 한 것으로 해석했다.

2007년 1월 중국 로켓군이 위성 파괴(ASAT)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에도, 외교부는 수일 간 논평을 내지 못했다. 비밀을 중시하는 PLA 지도부가 후진타오에겐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다른 부처와는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았다.

NYT는 “미ㆍ중 관계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이 발생해 급속히 전개되는데, 중국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고 중국이 효과적으로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면 이는 다른 나라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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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EP-3 정찰기/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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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EP-3 미 해군 정찰기가 도발 비행을 하던 J-8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 섬에 불시착했다. J-8 전투기는 두 동강 나고 조종사는 실종됐다. 그러나 양국 두 정상 간에는 통화할 핫라인이 없었다. 이후에 핫라인이 개설됐지만, 이번 ‘스파이’ 풍선 사건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애미 B 제거트 후버 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NYT에 “중국 내에서 누가 누구에게 얘기하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미국 격추에, 중국 민족주의 여론 들끓지만

시진핑은 풍선이 격추되면서, 중국 인터넷에서 들끓는 민족주의적 반응까지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중국 국방부는 격추를 “과도한 대응”이라며 “중국은 비슷한 상황에서 필요한 수단을 취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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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시민이 미국의 중국 풍선(流浪氣球) 격추를 비판하는 중국 일간지 기사를 읽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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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선 자존심을 세우고, 외부 압력에 결연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상징적’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아시아ㆍ태평양 선임 국장을 역임한 에반 S 메데로이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은 미국 등 주요국들과 관계 개선을 원하고, 또 이번에 ‘현행범’으로 붙잡힌 것이라 보복할 수단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문제로 손이 묶여 있는 시진핑으로선 미국과 또 다시 일대일 적대적 연쇄 반응을 시작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라는 얘기다.

시진핑으로선 최소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양국 관계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가용(可用) 방법이 애매하다. 중국 외교부는 격추 이후에 “미국 정부가 차분하고 프로페셔널하고 자제적인 방식으로 이 사건을 대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중국으로선 그 풍선은 ‘민간 과학용’이었고, 미국이 ’과도한 대응’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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