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를 보여주는 <피지컬: 100>

넷플릭스 <피지컬 :100>에서 추성훈 선수와 신동국 선수가 일대일 대결을 벌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

‘감히’ 격투기 스포츠의 대선배인 추성훈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는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전 소방관인 신동국. 총 3억원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떨어진다. 추성훈은 후배를 상대로 이겨봐야 크게 얻을 게 없고, 진다면 더욱 치명타인데도 수락했다. 공 하나를 놓고 3분간 온몸으로 싸웠다. 싸움이 격해지면서 추성훈은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수많은 시간과 땀이 빚어낸 그들의 근육 위엔 또 하나의 땀방울이 맺혔다. 경기 종료 이후 둘은 맞절을 했다. 지켜본 참가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신동국은 “영광스럽고 감사드린다”며 감탄했다.

“가장 완벽한 피지컬은 무엇인가”

MBC 시사교양국 소속 장호기 PD가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달 24일 공개 직후 넷플릭스 톱10 기준 비영어권 TV쇼 부문 7위에 올랐고, 전 세계 33개국에서 톱10에 진입했다. “지구 반대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들겠다”는 장 PD의 포부는 통했다.

<피지컬:100>은 ‘가장 완벽한 피지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홈트’가 유행할 정도로 운동에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새 트랜드를 반영한 것. ‘몸 좋다’는 이들 다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추성훈부터 평창 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운동 유튜버 심으뜸,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농부 김경진, UDT 출신 에이전트 H 등. 남녀불문, 인종불문 100명을 모아놓고 개인별, 팀별 경기를 거쳐 최종 살아남은 우승자 1명에게 상금을 준다. 서바이벌 게임의 상징인 MC도 없고 참가자들의 서사도 크게 담지 않았다. 여느 예능에 등장할 법한 ‘악당’도 없다. 오로지 참가자들의 몸과 감정에 집중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장 PD는 7일 서울 명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공대를 나왔는데 훈련이나 레크리에이션이 ‘축구, 탁구, 유도 선수 출신 나와서 붙어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다니던 헬스장의 ‘이달의 BEST BODY’ 게시판에 제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 걸 보고 의아했다”며 “그러면서 ‘가장 좋은 몸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승부는 역시 해봐야 안다’

<피지컬:100>의 매력은 우락부락한 ‘덩치맨’들이 무조건 이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승부는 해봐야 안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본게임 시작 전 순위를 정하기 위한 오래 매달리기 게임에서는 의외로 산악구조대 출신 참가자가 1등을 차지했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라 ‘생활형’ 근육이 이긴 셈이다. 공을 최종적으로 손에 쥔 자가 이기는 ‘3분’ 일대일 게임에서도 누가 봐도 덩치가 훨씬 큰 이가 이길 싸움이었지만 민첩하고 전략을 잘 쓴 보통 체격의 체육교대생 출신 참가자가 살아남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었다.

제작진의 예상도 빗나갔다. 장 PD는 “어느 출연자가 어디까지 올라가고 어떤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고, 우리 예상을 깨주길 바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촬영하면서 ‘내가 몸에 대한 편견이 많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에이전트 H가 탈락했을 때 장 PD는 “방송쟁이 입장에서는 너무 아까웠다”고 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을 연출한 장호기 MBC PD가 7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100>은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인데도 올림픽 경기처럼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다. 추성훈·신동국의 매치가 그랬다. 장 PD는 이들의 매치와 장성민 럭비 선수와 박민지 씨름 선수 간 대결을 가장 기억 남는 매치로 꼽았다. 여성 참가자가 일대일 경기에서 남성 참가자를 고른 것이다. 이기기 위해 일부러 약한 상대를 고르지 않는다. 지고 나서도 화내는 출연자는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피지컬:100> 비평 기사에서 “액션 피겨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 참가자들은 자신이 동경하던 영웅을 만나면 매우 협조적이고, 경쟁에서 물리치기라도 하면 미안해하기까지 한다”며 극찬했다. 장 PD는 “출연자들은 게임이 끝나는 순간 정말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을 보여줬다”면서 “박수치고 서로 포옹하고 맞절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와 저희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피지컬:100>은 여느 프로그램처럼 탈락자들이 MC나 심판에 의해 질질 끌려나가거나 벌칙이 주어지지 않는다. 퇴장하면서 망치를 들고 제 몸을 본뜬 토르소를 박살을 내야 한다. 장 PD는 “드라마나 영화에선 탈락하면 총을 쏘고, 서바이벌 게임에선 명찰을 떼든지 하는데 보다 통렬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보자는 생각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깨도록 했다. 출연자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MBC PD가 넷플릭스에 무작정 e메일

이 프로그램은 시작도 특이하다. 장 PD는 현재 지상파인 MBC 소속이다. 그는 2021년 10월 넷플릭스 예능 담당 PD의 e메일로 기획안을 보냈고 넷플릭스는 2주 만에 제작 결정을 내렸다. 초스피드였다. 유기환 넷플릭스 콘텐츠팀 매니저는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PD님의 메일을 받았는데 기획안을 읽어볼수록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장 PD는 “교양PD라고 해서 교양만 해야 하는 게 아니고 꼭 TV에만 넣어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연출자로서 글로벌 회사의 문을 두드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성제 MBC 사장은 신년사에서 MBC가 더이상 지상파 방송이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라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사도 일종의 콘텐츠 제작회사가 되어가는 경로인 셈이다.

전 세계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다보니 자막과 설명을 줄여야 했고, 반대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청자에게는 ‘추성훈’을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해외 시청자에게는 설명해줘야 했다. 장 PD는 “한국 시청자가 제일 중요하지만 전세계 시청자가 보시기 때문에 자막이나 표현이 문화적, 정서적으로 문제가 될지 고민했다”면서 “최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삭제했고 누가봐도 직관적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장 PD는 “한국에서 시즌 2, 나중에는 전세계 각 대륙별로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피지컬:100>은 7일 5~6회가 공개됐다. 총 9회로 구성돼 있다.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의 한 장면. 4회부터는 팀별 경기가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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