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대통령 부재 대신해 ‘노무현 시대 징비록’ 남기겠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길을 찾아서] 23번째 집필자 이정우 명예교수

‘출범 20돌’ 맞은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


한겨레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3번째 이야기로, 이정우(72)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참여정부 천일야화’를 직접 집필한다. 오는 2월25일로 출범 20돌을 맞는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그의 이야기는 7일부터 매주 화요일에 연재한다. 그는 부동산 대란, 재벌개혁, 분배냐 성장이냐, 균형발전과 신행정수도 추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 고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의 진행 과정 등을 톺아보며, 관련 비사 등도 처음으로 털어놓을 예정이다. 그는 ‘2012년 대선 비화’와 ‘2022 대선 막전막후’에 대한 공개도 예고했다.

“최근들어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이 이런저런 형태로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만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도 상전벽해만큼이나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새삼 아쉬운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재입니다. 노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가장 확실한 회고록을 남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통령 부재’라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보좌했던 각료나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약 1000일간 참여정부 정책의 최일선에서 일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바로 옆에서 보좌를 했던 경험을 되살려 그때의 일을 가감없이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6일 회고록 집필에 나선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를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인 2002년 8월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그해 12월19일 노 후보의 극적인 승리 순간을 함께한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윈회 간사를 맡았다. 이어 그는 2003년 2월부터 초대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 2004년 3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로서 참여정부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 첫날부터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3년 가까이 기록해둔 10권의 일기와 각종 회의 때마다 해둔 메모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정리해왔다.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자리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 때라 신설된 것이었습니다. 정부 부처 중 외교, 국방, 통일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모든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일에다 덧붙여 대통령 국정과제인 장기적 정책과제의 추진까지 담당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그 시절 일이 너무 힘들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육체적으로 철인(鐵人)을 요구하고, 정신적으로 만능, 무소부지의 철인(哲人)을 요구한다. 도저히 인간이 맡을 수 없는 자리’라고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특히 참여정부 초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었고, 난리통이었다. 돌이켜보면 5년간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취임과 동시에 북핵위기, 카드대란, 화물연대 파업, 은행 파업, 철도파업, 전교조의 대정부 투쟁, 스크린 코터를 둘러싼 영화계 갈등, 심각한 경기 불황, 부동산 폭등 등 엄청난 내우외환에 시달린 시기였다.

“무엇보다 근소한 표차로 당선된 노 대통령에 대해 상대방 진영에서는 도무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상대 후보였던 이회창 전 감사원장과 비교하면 상고 출신의 변방의 변호사 노무현 당선자는 여러가지로 대비되는 존재였으니까요. 특히 보수 언론은 해묵은 색깔 공세에다가 대통령의 말실수까지 더해서 연일 호재를 만난듯 참여정부를 맹폭격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누구도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 보수 진영에서도 노무현을 인정 내지 존경하는 분위기가 완연해졌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이런 평가의 반전이 일어난 까닭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과거의 평가는 아마 상당 부분 감정적, 관성적인 음해, 비방이 많아서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고 한다면 현재의 호의적 평가는 그 이후 정부들의 실정에 힘입은 반사이익 효과가 일부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오해와 불신이 저절로 희석되고,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진정성을 다수 국민이 이해하게 된 것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완전한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진실은 아마 양극단의 중간쯤의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 맹목적 비난도 자제해야 하지만 동시에 무비판적, 추종적 상찬도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객관적 눈으로 과거 있었던 일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자화자찬 회고록’을 피하고 잘한 일과 부끄러운 일, 모두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쓸 것을 다짐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유성룡의 <징비록>,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 등 대표적인 우리 역사 회고록을 살펴봤습니다. 셋 다 전쟁이라는 난리통 속에서 남긴 희귀한 일기 또는 기록이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들 고전을 참고하면서 ‘현대판 징비록’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진정 먼 훗날에도 살아남는 회고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일본 온천여행 떠났다가 3명 숨져… ‘히트쇼크’ 뭐길래
▶▶한국인의 주식이 고기로 바뀌었다▶▶마음 따뜻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