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숙박에 욕실까지 있는데…모텔 된 룸카페, 복지부 뒷짐 왜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5일 오후 서울 한 강남역 룸카페. 방에 폭신한 매트리스와 쿠션이 있다. 채혜선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있는 ‘룸카페○○’. 이곳은 최근 청소년을 상대로 한 영업이 논란이 된 장소 중 하나다. 쟁점은 카페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실상 모텔 영업을 한다는 점. 이날 찾은 룸카페는 출입문이 있는 방 20개가 쪽방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곳은 만실이 아니면 1인당 1만원으로 영업시간인 자정까지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가로·세로 약 1.6m x 1.8m 정도 되는 방 안엔 폭신한 매트가 깔려 있었다. 담요는 원하면 받을 수 있었고 실내의 TV에선 성인 인증 없이 자유롭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즐길 수 있었다.



청소년은 모텔로 생각하는 룸카페



이 업소의 주된 고객은 청소년과 2030세대다. 업소의 아르바이트 종업원은 “청소년 출입 검사를 따로 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룸카페가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 업소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여가부의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 결정’ 고시에 명시된 ‘밀폐된 공간이거나 침구·시청 기자재 등을 놓거나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 등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영업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일 서울 강남·홍대입구역 밀폐형 룸카페 10곳을 돌아보니 청소년 출입을 막는 곳은 없었다. 강남 한 룸카페 이용을 마치고 나오던 한 10대 커플은 “주민등록증 검사도 하지 않았고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대 인근의 한 룸카페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종업원 A씨는 “주말 손님 절반 이상이 청소년”이라고 했다. 또 다른 룸카페 아르바이트 학생은 “근무하다 피임기구를 치울 때가 적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00년대 초기 등장한 룸카페는 천 등으로 구획을 나눠 독립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청춘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곳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업태가 최근엔 출입문이 생기고 침대가 놓인 밀폐된 신·변종 룸카페로 변신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청춘 고객들을 상대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태가 자유업 또는 일반음식점에 포함돼 있다 보니 전국에 룸카페가 몇 개가 있는지는 정부에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뒷길에서 만난 여고생 3명은 “룸카페는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데로 우리(학생)끼리는 다 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선 아무런 제재가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터넷에선 “청소년 성행위가 끊이질 않는다”는 룸카페 목격담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여가부는 모텔과 유사한 신·변종 룸카페에 대한 단속을 당부하는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여가부 관계자는 “고시에 따라 룸카페 단속을 해달라는 공문을 지자체와 경찰에 보냈을 뿐 여가부 차원의 대책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일부 룸카페는 방 안에 씻을 수 있는 욕실을 두거나 밤샘 영업을 하고 있다. 룸별 침대와 위생시설(욕실)이 있다고 홍보하는 서울 서대문구 한 룸카페는 “미성년자도 오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라고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강남역 한 24시 룸카페 관계자도 “밤새고 잘 수 있는 곳”이라고 홍보했다.

■ 공중위생관리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공중이 이용하는 영업의 위생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위생 수준을 향상시켜 국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①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공중위생영업”이란 다수인을 대상으로 위생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으로서 숙박업ㆍ목욕장업ㆍ이용업ㆍ미용업ㆍ세탁업ㆍ건물위생관리업을 말한다.

2. “숙박업”이란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을 말한다. 다만, 농어촌에 소재하는 민박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숙박에 욕실까지 있는데 숙박업소 아니다?



사실상 숙박이 가능한 곳들이지만, 법률상 숙박업소는 아니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업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측은 “룸카페는 숙박업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단속이나 고발 조치가 현재까지 없는 이유다. 청소년보호법 주무 부처인 여가부와는 입장이 다른 상황이다.

여가부 측은 “업소 구분은 허가·인가·등록·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이뤄지는 영업행위를 기준으로 한다”며 신·변종 룸카페는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룸카페 목적·취지와 다른 일부 변종 영업이 있다고 해서 전체를 숙박업으로 볼 수 없다”라면서도 “이름만 바꿔 법을 비껴가는 업소들이 나올 때마다 살펴보고 있고 룸카페도 관련 대처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숙박업(공중위생영업)은 신고제여서 정부의 개입과 통제가 보다 더 확실해질 것”이라고 복지부의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미등록 숙박업 업소나 불법 숙박업소는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인지가 사실상 힘들다”며 “자유업으로 등록된 룸카페 등에 대한 전수 조사도 없고 실무 부처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소년비행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 요원은 “룸카페에서 찍은 성착취물도 등장하고 각종 범죄 우려가 있는 만큼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가부·복지부·교육부 등 관계 부처가 청소년에게 유해업소임을 적극 알리며 청소년 문화를 바꾸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황예린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