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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각국 중앙은행의 ‘금 사재기’에도 한국은행 금 보유 10년째 그대로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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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대량으로 금(金)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금리 인상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금값이 쌀 때 때 금을 사뒀다가 비쌀 때 팔아 수익을 올리는데, 올해 들어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의 투자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년 넘게 그대로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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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 선물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19% 상승하면서 온스당 1940달러를 넘어섰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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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중앙은행 금 1136톤 매수…55년來 최대

6일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금 수요는 4741톤(t)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2011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중앙은행의 ‘금 사재기’에 힘입어 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WGC는 설명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에만 1136t(약 700억달러)의 금을 사들였는데, 이는 1967년 이후 약 5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전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전체 금 수요의 절반에 달하는 41.5%를 중앙은행이 차지했다.

크리샨 고폴 WGC 수석 애널리스트는 “1990년 이후 20년간 금을 내다팔았던 중앙은행들이 2010년 이후로는 매년 순매수하는 추세”라며 “지난해 불거진 지정학적 위기, 금리 인상 등 거시경제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자 금 보유량을 늘리려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국가별로 보면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가장 많은 148t의 금을 매입했고, 이집트(47t), 카타르(35t), 이라크(34t), 인도(33t) 등이 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11~12월 두 달 동안에만 62t의 금을 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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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10위 금 보유국 / 국제금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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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중앙은행의 금 매수도 급증했다.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지난해 하반기에만 금 862톤을 사들였다. 강(强)달러 현상이 정점을 찍었던 4분기에는 417톤 상당의 금을 매수했다. 지난해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달러화 강세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유로화·엔화·파운드화 등 주요국 통화가치가 달러화 대비 떨어지자, 중앙은행들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 보유를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미래 경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 성격”이라며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금값 상승 랠리만 놓고 보면, 중앙은행의 금 매입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브스는 “중앙은행은 금 가격이 쌀 때 사뒀다가 비쌀 때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투자전문 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국제 금 선물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19% 상승해 온스당 1940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꺾인 가운데 세계 최대 금 수입국인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으로 향후 산업용 금 수요가 늘어날 경우 조만간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선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값은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2020년 8월 온스당 2063.5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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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평로 한국은행 입구. /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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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수 트라우마’ 이후 금 투자 신중해진 한은

지난해 중앙은행의 금 사재기 열풍 속에서도 한국은행은 금에 손도 대지 않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2013년 이후 10년째 104.4톤이다. 매입가 기준 47억9000만달러 상당으로, 올해 1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4299억7000만달러)의 약 1.1%에 그친다.

한국은행이 금 보유량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과거 투자 실패 이후 금 투자에 신중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은 김중수 전 총재 시절인 2011~2013년 총 90t의 금을 매입했다. 유럽재정 위기로 금값이 치솟자 “한국은행도 금 투자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진 데 따른 결정이었다. 당시 금값은 온스당 1200달러에서 1900달러로 뛰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금을 사들인 직후 금값이 떨어지면서 ‘실패한 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금값이 고점일 때 금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가 손실을 본 뒤로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년간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은행은 그간 금 보유량 관련 질문에 “금은 이자가 붙지 않는 무수익 자산이고 보관료를 따로 내야 한다”며 “안정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금은 투자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금을 매입하지 않고 있고 당분간 살 계획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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