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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동칼럼]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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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폭탄’이 떨어진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들려온다. 주로 시장과 기술적 방법에 의존하는 자유주의 기후환경담론이 생산하는 논거들은 이러하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싸기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지 않고, 에너지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는 데도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이야기들은 일면의 사실을 말하지만 진실을 구성하는 데는 실패한다. 유럽과 미국의 높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시장을 자유화한 결과다. 자유화가 에너지 기업들의 경쟁을 촉발하여 저렴한 공급과 질 높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이라던 신자유주의 미담은 소수 대자본의 에너지 독점과 대규모 에너지 빈곤층의 양산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고 탄소배출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도 탄소배출산업을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여당과 야당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싸우면서 지원금 같은 임시적 조치로 땜질에 급급한 상황에서, 환경운동 진영에서 나오는 전기요금 인상 주장은 일견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는 정직한 직면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종용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국제 시장 동향, 국내 산업, 기업 위기, 성장 위기, 국가 위기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전하며 국민과 시민, 민중과 노동자에게 책임 분담을 요구한다. 이런 서사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경제상황을 마치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필연처럼 묘사하면서, 시장 질서를 자연의 질서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우리를 그에 적응해야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경제 법칙이 무슨 절대적 법칙도 아니거니와, 시장 법칙을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고 사회에 대해 기획 투사하는 건 매우 위험하며 정치적인 문제다.

가격을 올려 수요를 낮춘다는 발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건 비싸면 안(못) 쓸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와 같은 시장의 규율은 누구에게 가서 작동하고 누구를 비참하게 만드는가. 물이 부족하니 물값을 올려 수요를 통제하고, 식량이 부족하니 식품가격을 올려 적게 먹게 만들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정책은 구매력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하고, 실제 낭비 계층의 사치성 소비는 줄이지 못하면서 줄일 것이 없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소비부터 먼저 조일 것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유류세 인상으로 자동차가 줄어든 도로에서 ‘이대로 계속’ 가면 좋겠다고 환호를 지르는 부유층에게 가격 인상이 강제 수단이 될 리는 만무하다. 부자의 전기와 빈자의 전기를, 사치의 전기와 생존의 전기를 구분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빈자에 대한 지원책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본에 의한 에너지 독점과 상품화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에너지 바우처와 같은 저소득층 지원 대책은 ‘토지를 뺏고 빵을 배급하는’ 기만적 시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원은 결국 세금이 저소득층을 경유해서 에너지 기업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만들 뿐이다.

다른 수단은 없는가? 민중의 이야기 속에는 시장이 봉쇄한 방법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번 ‘폭탄’을 그나마 덜 세게 맞은 집들은 하나같이 창호와 단열을 이야기한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단 집들도 괜찮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야기의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가가호호 단열이 잘된 주택과 태양광 보급, 지역 에너지 공사를 통한 지역난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더 춥고 더 취약한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리모델링도 민자 투자와 개발 방식으로 되면 결국 세금으로 부양하는 녹색 성장과 기업 살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시장을 중심으로 한 논의를 민중의 삶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좌파가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노동정책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이다. 필수 업종 외에 야간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사람들에게 자신과 서로를 위한 돌봄의 시간을 돌려주는 것은 돌봄 정책인 동시에 에너지 정책이다. 에너지 개발의 이름으로 자연에 대한 폭력적 수탈도 멈춰야 한다. 수탈에 투입되는 에너지도 막대하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이 대안들을 강력하게 저지한다. 자본의 축적과 성장에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반자본주의를 말하지 않는 녹색 대안들은 민중을 기만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지원금의 액수와 방식, 요금인상률 따위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을 하다 시간이 다 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가를 물어야 한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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