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제 결혼자금 마련하려 배 탄 아버지가…” 실종자 아들 애태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료 구하려 선내 들어갔다 실종도

동아일보

5일 오후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비치도 서쪽 해상에서 해경과 SSU대원 등 구조당국이 전날 전복된 ‘청보호’의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2.5/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혼을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아들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1, 2년만 배를 더 타겠다’고 하셨습니다.”

청보호 전복 사고로 실종된 기관장 김모 씨(65)의 아들(38)은 5일 전남 목포시 신안군 수협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실종 소식을 듣고 경남 김해시에서 달려온 김 씨는 “50년 넘게 배를 탄 아버지라 어렸을 때 자주 못 보는 게 싫었다”며 “최근 빨리 결혼해라,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고 했다. 또 “어머니는 아버지 실종 사실을 잘 안 믿으려 하신다”고 덧붙였다.

신안군 수협에 마련된 대기실에는 김 씨와 같은 실종자 가족 10여 명이 모여 종일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의 수술비와 약값을 벌기 위해 배를 탔다가 사고를 당한 선원도 있었다. 이모 씨(46)는 3개월 전 심장 박동기 삽입 수술을 받은 아버지 병수발을 들며 의료비도 책임져왔다. 외국으로 이민간 친형이 ‘함께 살자’고 권유했지만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버지 이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결혼도 안 하고 아픈 나를 먹여 살리려고, 인생 쉽지 않아도 뭐라도 하려고 항상 성실했던 아들이었다. 사고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와 추운데 조심하고, 약 잘 챙겨먹고, 심장 안 좋으니 주의하라고 했다”고 힘없이 말했다.

특히 이 씨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선내로 다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생존 선원은 “(이 씨에게) ‘위험하니 얼른 나오라’고 외쳤지만 자고 있는 동료를 깨우러 이 씨가 선내로 들어갔고 그 이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김종욱 해양경찰청장이 5일 전남 신안군 어선 청보호 전복사고와 관련해 수중수색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2023.2.5 해양경찰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보호 선장 이모 씨(51)의 부인도 대기실에서 결혼식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부인 A 씨는 “사고 직전인 4일 오후 10시 24분 영상통화에서도 별 이상은 없었다”고 했다.

실종자 중에는 베트남인 선원 2명도 포함돼 있다. 이번에 처음 청보호에 승선한 신입 선원들이다. 청보호가 소속된 인천 선적회사 사무장 B 씨는 “돈 벌려고 한국에 온 청년들이 실종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목포=최원영 기자 o0@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