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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제재 옆구리 뚫렸나…“中, 러에 군용장비 수출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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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러시아 세관 자료 분석
중 방산업체, 첨단제품 등 수출
러 반도체 수입 절반 중국산
“러, 서방 제재 성공적 대체”
미, 제재 실효성 강화 나서


매일경제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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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뚜렷해진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중국이 군수 장비와 기술을 공급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유럽 국가 등 서방 진영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응한 조치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로부터 입수한 작년 4∼10월 러시아 세관 자료를 통해 이처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국영 방산업체들이 항법 장비, 전파방해 기술, 전투기 부품 등을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에 수출해왔다.

러시아로 수출된 항목의 수출국과 운송 일자, 운송업체, 수령자, 구매자, 주소, 상품 상세 등이 담겨 있는 세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4일 침공 이후 국제 제재로 대러시아 수출이 제한된 품목만도 8만 4000건이나 러시아에 흘러들었다. WSJ가 소개한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 거래를 보면,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노력이 무용지물이었다.

중국 국영 방산업체 폴리테크놀로지는 작년 8월 31일 러시아 국영 군사장비업체 JSC로소보넥스포트에 M-17 군용헬기의 항법장치를 수출했다. 같은 달 중국 푸젠 나난 바오펑 전자도 같은 러시아 업체에 장갑차용 통신방해 망원안테나를 판매했다. 10월 24일에는 중국 국영 항공기 제조사 AVIC가 러시아 방산업체 로스텍의 자회사인 AO 크렛에 Su-35 전투기 부품 120만달러(약 15억원)어치를 넘겼다. 미국 제재 대상인 중국 시노전자는 4∼10월에만 1300건, 총액 200만달러 이상 물품을 러시아에 공급했다.

이러한 품목은 중국이 러시아에 수출한 ‘이중 용도’ 상품 수만 종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고 WSJ은 전했다. 이중 용도 상품은 군사적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상품을 뜻한다. 현대전 수행에 필수적인 부품인 반도체가 대표적인 이중용도 상품이다. 반도체의 경우 대러시아 수출 규모는 2월 서방의 첫 제재 부과 후 통상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수개월 만에 기존 수준을 회복했다.

이 기간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은 중국산으로 드러났다. 내오미 가르시아 C4ADS 애널리스트는 WSJ에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영 방산업체가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품을 러시아 방산업체로 수출한 사실이 글로벌 무역 데이터에 포착됐다”며 “러시아 업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바로 이런 형태의 부품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 확립과 특수 군사작전 수행에 필요한 기술적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의견만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 국방부 등은 WSJ의 관련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중국의 러시아 원조 의혹에 대해 류펑위 주미중국대사관 대변인은 WSJ에 “중국이 러시아에 원조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사실적 근거가 없고, 순전히 추측에 불과하며 의도적으로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는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마자오쉬 부부장이 지난 2∼3일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안드레이 루덴코·세르게이 베르쉬닌 외무차관과 각각 협의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마 부부장과 러시아 관리들은 양자 및 다자 협력과 공통 관심사인 국제 및 지역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마 부부장의 러시아 방문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이뤄졌다.

중국의 러시아 전쟁 지원을 위한 반도체 공급 의혹은 미국 국제금융협회(IIF)도 지적했다. IIF는 “중국과 홍콩은 한국,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대러 수출을 줄이는 가운데 러시아에서 다른 나라의 반도체 공급을 성공적으로 대체했다”고 밝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중국에 이래라 저래라하기 어려운 미국은 대러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를 상대로 압박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 등을 상대로 미국 당국이 제재 엄수를 압박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들 국가의 개인 또는 기업이 제재 동참 대신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돕는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국 정부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지난주 브라이언 넬슨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의 튀르키예·UAE 순방도 이런 행보의 일환이었다. 튀르키예와 UAE는 외교 분야에서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러 제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싼값에 사들이는 등 경제적 이득을 추구했다. UAE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후 러시아인들에게 회피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러시아 부호들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튀르키예나 UAE 부동산 매입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제재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러시아 경제도 예상보다 타격을 입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0.3%로 올렸다. 내년에는 이보다 더 높은 2.1% 성장을 전망했다. IMF는 러시아 원유 수출량이 현재 상한제에서도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제재 대상이 아닌 국가로 무역로를 우회하는 방식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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