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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서경이 만난 사람] 류방란 원장 "서술·논술형 대입, 학습법 변화 없이 도입땐 사교육만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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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장]

대담=성행경 사회부 차장

수업 개선 노력하지만 우수교사 경험 축적 부족···교원양성 기관 변해야

교사에 융합형 교과 요구하면서 교·사대 제자리···교전원 등 도입해볼만

고등교육 질 향상 위해 한계大 퇴로 마련, 나머지 대학에 집중 투자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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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변화하고 있는 학교 현장을 반영한 교수·학습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연구와 경험 축적·활용이 너무 부족합니다. 1차적으로 교원 양성 기관이 변해야 합니다.”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은 1일 충북 진천군 KEDI 원장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초중등 교육에서 수업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우수한 교사들의 경험과 노하우들이 체계적·전문적으로 축적되지 못한 것 같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류 원장의 이러한 생각은 최근 미래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교육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KEDI는 초중등교육부터 고등교육·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각종 교육 분야 데이터 분석과 연구개발을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 수립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 가운데 하나로 ‘교육 개혁’을 꼽고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류 원장의 책임감 역시 더 막중해졌다. 류 원장은 “KEDI의 정책연구가 정부의 교육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교육부와 수시로 협의하면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책 방안을 제안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학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교수·학습 방식은 KEDI가 다루는 중요한 연구 과제 중 하나다. 류 원장은 “코로나19 상황은 학생들의 학력 격차뿐 아니라 교사 간 격차 역시 드러난 계기가 됐다”며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했던 교사들을 뒷받침하는 정책 지원이나 연구 등을 통해 우수 사례를 확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를 겪으며 교사들이 방역 관리, 행정 업무 부담이 매우 커진 상황에서 재교육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부담을 경감시킨다면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발표된 ‘2022년 KEDI 교육 여론조사’에 따르면 ‘학교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느냐’는 질문에 △특색 있는 교육 과정 운영(18.6%) △맞춤형 상담(17.8%) △수업 개선(16.6%) 등이 1~3순위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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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원장은 근본적으로 교원 양성 단계에서부터 교수·학습 방식에 대한 연구개발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교사들은 개개인 혹은 소모임 단위로 새로운 교수·학습 방식들을 축적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교원 양성 기관이나 연구기관이 교원 양성 과정에서는 어떻게 교수력을 발전시키고 있는지, 교사들은 어떻게 평가를 발전시키고 있는지 등을 하나의 실천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교수학(敎授學)은 현장과의 밀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원장은 “현장에서 보면 소위 ‘난장판’이 된 학급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교사들이 많은데 교원 양성 기관에서는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라며 “현장에서 실행하고 그것을 이론화해 다시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진짜 교수학이라고 할 만한 것들에 대한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학교를 교수법의 혁신·축적·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류 원장은 “혁신학교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개별 교사가 아니라 학교 단위의 조직과 문화의 변화, 교실 수업의 변화를 함께 구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교수·학습이나 평가 면에서 수정·보완돼가며 실천 이론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채 성급히 확산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범대든 교대든 교원 양성 기관이 교수법 혁신과 교육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미래 교원 양성을 취지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전문대학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류 원장은 “교원 양성 변화의 관건은 ‘교과 장벽’”이라며 “융합형 교과, 통합형 교육이 필요하다며 교사에게도 이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길러내는 교·사대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 시행 등을 생각하면 다양한 인력이 유입될 수 있는 전문대학원 체제가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인력이 유입되고 교전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교사가 될 수 있게 하는 방향이면 좋겠으나 학부 구조조정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 교·사대 통합 같은 잠재된 갈등이 많아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교전원은 4년제인 교대와 사범대 중심의 교사 양성 체계를 5~6년제로 늘리는 등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졸업생에게 전문 석사학위, 정교사 자격증을 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교육 현장에 대한 연구와 실습 경험을 두루 갖춘 예비 교사를 양성하려면 교원 양성 과정부터 석사급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교육 당국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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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원장은 국제바칼로레아(IB)나 서술·논술형 평가 확대 등 미래 교육을 위한 평가 체제 개편에 대해서는 성급한 도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IB 교육 과정은 적용 절차가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학교 수준에서 교사들이 함께 진행해야 하는 것이기에 급속하게 확산되기도 어렵고 주류가 되기도 어렵다”며 “다만 이러한 교육 과정을 적용하며 교육의 취지와 방법을 현장 실정에 맞게 재해석해 우리 나름의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 방식을 정련화하고 노하우를 축적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가 방식 개선과 관련해 류 원장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서술·논술형 평가는 교수·학습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지 않을 경우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며 “지금껏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공정성 시비로 왜곡되거나 시비에 따른 부담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IB를 적용하는 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취 수준을 어떻게 명료화하고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실천 경험을 축적하고 발전시켜 우리의 것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류 원장은 2025년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논의 중인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서도 서술·논술형 평가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류 원장은 “당장 내년에 발표해 2028년부터 적용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교육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정성’이라는 사회적인 기대가 큰 만큼 단박에 폐지하지 못하고 일정 비율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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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EDI가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연구 분야는 고등교육이다. 학령인구 감소세가 가팔라지면서 대학의 위기가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속적인 신입생 충원난을 겪으면서 사실상 더 이상 운영이 힘들어진 한계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있게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지를 두고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다. 대학들은 한계 대학에 대한 퇴로를 열어줘 대학 청산 시 잔여재산을 환수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사학법인에 지나친 특혜를 준다는 시각도 있다.

류 원장은 국내 고등교육의 질 제고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한계 대학들이 스스로 문을 닫고 나갈 수 있도록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리나라 고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높은 진학률 때문이기도 하다”며 “25세부터 34세까지 인구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70%인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이지만 고등교육의 질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가 신설됐지만 3년 한시 설치이기도 하고 규모도 부족해 투자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재정 투자가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한계 대학에 퇴로를 열어주고 나머지 대학들에 대해서는 적정 규모화와 특성화를 지원하며 보다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집중 투자를 바탕으로 지방대 가운데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글로컬 대학 육성 계획’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교육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지방대 30곳을 뽑아 대학당 1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멸 위기의 지방과 지방대를 동시에 살리겠다는 취지다.

류 원장은 “지역 대학의 생존은 지역 혁신에 기여하는 인재를 육성·배출하며 지역 기반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지방대 육성을 국정과제를 정하고 정책을 추진 중인데 지방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KEDI 역시 지난해 고등교육 성과 분석 연구에 이어 올해도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간 협력 강화 방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거버넌스 재설계 방안, 대학 교육 혁신 모니터링 연구 등을 통해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he is...

△1960년 전북 완주 △서울대 교육학 학사·석사·박사 △1996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2016년 한국교육개발원 부원장 △2019년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2019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2020년 한국연구재단 비상임이사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2021년~ OECD CERI(교육혁신연구센터) 이사 △2021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분과위원회 위원

정리=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사진=권욱 기자 uk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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