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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순신만 알았던 당신…육상서 처음 이겼던 ‘여기’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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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육상전 첫 승전 ‘웅치전투’

전북·완주·진안, 명품 숲 등 성역화


한겨레

전북 진안군 부귀면 창렬사 앞에 세워진 웅치전적비 기념비. 기념비 전면에는 이순신 장군이 사헌부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있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를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뜻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진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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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를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음력) 선조 25년에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맹활약으로 제해권을 잃은 왜군은 군량 확보라는 현실적 상황에서 곡창지대인 호남을 반드시 장악해야만 했다.

전라도 침공의 임무를 맡은 왜군 장수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소조천융경)은 호남의 무주 등을 점령한 다음 웅치를 넘어 전주로 넘아가려고 했다. 웅치를 넘기 위해 조선의 관군·의병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데 이를 ‘웅치전투’라고 한다. 7월8일 웅치에서 전면 공격을 퍼부은 왜군은 주력군이 큰 타격을 입고 겨우 웅치를 넘었다. 그러나 전주부성의 외곽인 안덕원에서 대기한 조선의 군대와 잔여세력으로만 싸우다 패해 결국 웅치로 되돌아와 진안을 거쳐 금산으로 퇴각했다. 웅치전투를 임란 초기 실질적인 최초 육상전의 승리로 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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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적으로 지난해 지정된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있는 웅치. 진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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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적지가 지난해 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전북도와 완주군·진안군이 웅치전적지 성역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북도 등 3곳 지자체는 올해 예정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 각 5천만원씩 웅치전적지 관련 사업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이 예산으로 트레킹 코스를 갖춘 숲을 조성하고 기념관도 세울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완주군과 진안군은 날짜와 장소를 달리해 각자 진행해 온 기념식을 통합해 제1차 웅치전적지 지역통합 기념대회도 올해 중 열 방침이다.

양연숙 전북도 문화유산정책 팀장은 “웅치전투는 임란 초기 실질적인 육상전에서 승리 뿐만 아니라 호남 방어로 임란 극복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관군·의병의 민관협동 전투여서 의미가 깊다. 단계적 성역화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웅치전적지 지정구역 약 23만2300여㎡(완주 13만3000㎡·진안 9만9300㎡)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한 뒤 지난해 12월30일 ‘임진왜란 웅치전적’으로 최종 고시했다. 애초 1976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대(465만여㎡)가 웅치전적지로 간주되며 전락북도 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됐으나 이후 웅치전투의 주요 전투지가 전북 진안 부귀면 세동리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임이 여러 연구를 통해 명확해지면서 웅치전적지의 구역도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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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웅치전적지의 모습. 진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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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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