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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저도 선배 노릇 할 수 있을까요?”···‘탈마스크 캠퍼스 라이프’ 어색한 ‘코로나 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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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5일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예비 대학생들이 선배들의 환영을 받으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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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4학년 졸업반이 되는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문현정씨(23)는 캠퍼스 생활이 아직도 낯설다. 입학 때부터 2년 동안 비대면 생활을 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는 문씨는 지금도 강의실 위치를 종종 헷갈리곤 한다. 후배와의 만남에도 선뜻 나서기가 꺼려진다. 선배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선배들과 교류가 없었다 보니 밤샘 공부하기 좋은 장소, 교수님 특성 등 대학 내 문화에 대해 후배들한테 해줄 말이 별로 없다”며 “후배들이랑 뭔가 해보고 싶어도 ‘내가 멘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앞선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실내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며 대학가에도 본격적인 대면 생활이 시작됐다. 신입생을 맞이할 준비로 활기를 띠는 것같이 보이는 대학 캠퍼스 이면에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코로나 학번’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2020~2021년에 대학에 입학해 새내기 배움터(새터)부터 MT, 축제, 학교 수업 등 대학 생활을 대면으로 경험하지 못한 나이대다. 선후배는 물론 동기들과의 공식적인 교류도 거의 없었다. 학교에 관한 정보는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얻어야 했다. 문씨는 “나만 코로나19 이후 2년을 교류 없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처음 대면 수업을 해보니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코로나 학번들은 처음 해보는 선배 역할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20학번인 최모씨(22)는 대면 활동이 시작되자 MT나 새터 등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선배 역할을 생각하면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벌써 4학년에 올라가게 됐는데, 흔히 ‘졸업반 선배’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자신이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최씨는 “졸업반이면 동아리 활동이나 수업 고르는 팁 등 학교에 대해 다 꿰고 있어서 후배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21학번 김예린씨(21)는 2학년 때인 지난해 가을 학과에서 진행한 MT에 참여했지만, 후배들과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김씨는 “후배가 궁금해하는 것을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후배가 아니라 동기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후배를 대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색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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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본관 중강당에서는 2021학년도 신입생 온라인 입학식이 열렸다. 윤성이 총장이 줌(Zoom) 온라인 영상을 통해 사전에 신청한 신입생들과 화상을 통하여 환영의 인사를 전하고 신입생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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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 학생회는 코로나 이전의 캠퍼스 문화를 되살려내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학생회 집행부도 비대면 새터를 경험해본 적 없는 ‘코로나 학번’이 대다수다. 이전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 보니 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양귀남 연세대 공과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존에는 과별로 선배들에게 프로그램 진행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과거 새터를 기획한 선배들이 이미 졸업했거나 너무 고학번이라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며 “구글 드라이브에 남아있는 자료를 찾아보고 새터를 경험해본 선배들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4년 만의 신입생 대상 숙박 행사를 준비한 서울대 학생회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이전에 행사 주최 경험이 있는 선배와 집행부 간의 연석회의를 열었다. 손재희 서울대 경영대학 학생회장은 “선배들이 직접 예산안에 대해 피드백도 해주고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도 해줬다”며 “과거 자료만을 참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단체행사나 집단활동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학생회로서는 커다란 장벽이다. 연세대 공대 학생회는 새터에 신입생뿐 아니라 재학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율은 3~4년 전과 비교해 크게 낮은 상황이다. 양 비상대책위원장은 “선배가 10명 이상 참석하는 과가 없을 정도”라며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선배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1 대 1 정도던 재학생과 신입생의 새터 참가 비율이 올해는 1 대 3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손 학생회장은 “새터는 신입생뿐 아니라 선배들도 참여할 수 있는 행사였지만 코로나 이후로 ‘신입생 대상 행산데 재학생이 참가해도 돼?’란 분위기 생겼다”며 “코로나 학번들이 대면행사에 익숙지 않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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