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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수상하거나 이상하거나…첨단위성 시대에 ‘정찰 풍선’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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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본토 상공에 사흘째 표류…미 “정찰 기구” vs 중 “기상 기구”

인공위성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첨단기술 보유국에 실익 없어 의문


한겨레

2023년 2월1일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 상공에서 고고도 풍선이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미 국방부가 포착해 공개했다. 미국은 이 풍선이 중국의 정찰기구라고 의심한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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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용 정찰 기구인가, 기상관측 기구인가?

2월 4일(현지시각) 미국 본토 상공에 중국제 대형 풍선이 사흘째 떠다니면서, 그러잖아도 팽팽한 패권 경쟁을 이어가는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2일 미국 국방부는 “미국 본토 상공에서 고고도 정찰기구를 탐지했다”며 “미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이를 면밀히 추적, 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 기구가 중국 것임을 확신한다. 목적은 명백히 정찰이며, 항적은 몇몇 민감한 장소 위를 지나갔다”고 말했다.

중국은 시차를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 비행체가 자국 것임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3일 밤 중국 외교부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올려 “그 비행선은 중국에서 간 것으로, 기상 등 과학연구에 사용되는 것”이라며 ”서풍의 영향과 자체 통제 능력의 한계로 예정된 항로를 심각하게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은 비행선이 불가항력으로 미국에 잘못 들어간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중국은 앞으로 계속 미국 쪽과 소통을 유지하며 이번 의외의 상황을 적절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2월1일 미군은 북서부 몬태나주 상공에서 이 기구의 격추를 검토하고 F-22 전투기까지 출격시켰지만 일단 격추 계획을 접었다. 당시 긴급상황을 보고받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군사적 대응 옵션을 자문했고,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지상의 민간 피해 등을 우려해 물리적 공격을 자제할 것을 백악관에 강력히 건의했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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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3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국무부에서 우리나라의 박진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연설하고 있다. 중국의 풍선이 미국 본토에서 비행한 안보 위기 사태에 항의해, 블링컨 장관은 예정된 중국 방문을 출국 예정일인 이날 전격 취소하고 방문을 연기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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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 비행체가 기상관측 기구가 길을 잃고 표류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정찰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중국 쪽 주장을 일축했다. 이 풍선의 비행 경로인 몬태나주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Ⅲ를 운용하는 공군 부대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2월3일 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미 국방부 대변인이 발송한 성명을 인용해 “또다른 중국 정찰 풍선이 중남미 상공에서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국방부 관리는 “이것이 (미주) 대륙의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풍선이나 열기구의 역사는 오래 됐다. 근대의 군사용 정찰 풍선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는 열기구를 발명해 하늘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유럽 각국은 앞다퉈 열기구와 비행선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군사 정찰 목적으로도 널리 활용됐다. 단순히 공기를 가열해 띄우던 열기구는 엔진을 장착한 비행선으로 한 단계 발전했다. 20세기 초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은 길이 236m,에 부피는 10만5000m³에 이르는 당대 최대의 비행선으로 유명했다. 1928년 첫 비행에 성공한 체펠린은 상업적 정기 운항에 나섰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공군의 정찰 및 폭격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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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독일 체펠린사가 제작한 초대형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미국 뉴저지 레이크허스트에 착륙해 있다. 꼬리날개에 나치 문양이 선명하다. AFP/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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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첨단 군사위성 시대에 정찰기나 드론도 아닌 구닥다리 풍선이 군사정찰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풍선은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고 속도는 매우 느려서 쉽게 관측되는 데다, 구조상 자체 방어 장비를 갖추기도 불리하다. 정체가 노출되거 격추되기도 쉽다. 그러나 군용 정찰기나 인공위성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운용비용이 저렴하고, 조용히 한 자리에 머물면서 기상과 지상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른바 ‘가성비’가 높다는 이야기다.

현대식 정찰 풍선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2만4000~3만7000m 상공의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다. 이는 민간항공기(고도 1만m)나 전투기(2만m)의 순항고도보다 훨씬 높지만 200~2만㎞ 상공의 지구 저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보다는 훨씬 낮은 고도에서 지상 목표물을 관측할 수 있다. 미국도 비슷한 방식의 고고도 정보수집 기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미군의 고고도 정찰기 U-2와 블랙호크의 작전 고도가 2만m 정도다.

그러나 첨단 항공기술과 고해상도 카메라가 상용화한 오늘날, 그런 기술을 다 갖추고 있는 중국이 사실상 퇴물 수준의 풍선을 미국 본토에 띄워 정찰을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있는 실익보다 군사적 충돌 위험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부에선 중국이 ‘실수’를 가장해 미국의 방공능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의중을 떠보려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공군력 분석가 허위안밍은 영국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은 아마도 미국에게 ‘우리가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또한 필요한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지속적인 경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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