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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200만원 때문에 남편 죽인 보험사 그놈”…무죄받고 세상 떠났다 [어쩌다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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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장해보험금 달라고 안했는데
“청구했다”며 보험사기 수사의뢰
2년간 재판받고 결국 무죄 판결
스트레스 시달리다 암 걸려 사망


매일경제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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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陳情)’은 국가나 공공기관 등에 일정한 조치를 해달라는 의사표현입니다. 고소가 상대방의 형사처벌을 구하는 것인 반면, 진정은 체불임금 진정과 같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일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경우 보험사는 경찰에 보험금을 받아간 사람을 조사해 사기가 맞는지 확인해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그러면 경찰은 내용을 검토한 후 수사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합니다.

보험사가 진정서의 형식으로 경찰에 서류를 제출하긴 하지만 그 내용과 진정이 이뤄지는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사실상 고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수사기관에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신고할 경우 무고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때 신고자는 자신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도 스스로 진실한 것이라 확신해 신고했을 때는 무고죄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신고하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 뿐만 아니라 진실하다는 확신 없는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보험사기로 돌아와서, 보험사는 나름의 기준과 통계를 활용해 보험사기 의심 사례를 선별하고 그에 따라 수사기관에 진정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에 조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 보험사기로 몰아 가는 것인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터집니다.

‘엉터리’ 보험사기 조사한 보험사
이번에 소개할 사례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60대 A씨는 일을 하다가 추락해 척추가 골절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후 다친 부위인 허리뼈를 금속물로 고정시키는 척추유합술을 시행 받았습니다.

A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보험사에 수술비 담보와 입원일당 등을 청구해 약 2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보험사는 A씨가 사고 경위를 사실과 다르게 알려 보험금을 받았다면서 이를 확인해 A씨를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경찰에 진정서를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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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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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해당 진정서 내용에 A씨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후유장해보험금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후유장해란 상해나 질병으로 부상부위에 대한 치료를 마친 후에도 신체에 영구적으로 남게 되는 후유증을 말합니다.

보험사는 진정서에 A씨가 수천만원의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는 내용을 포함해 경찰서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당시 A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한앤율 한세영 변호사는 “변호를 의뢰받아 기록을 검토해 보니 당사자(A씨)는 이미 경찰서에서 가서 보험사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고 자백을 한 상태였다”며 “고령에다가 치료로 정신이 없다 보니 진정서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로 자백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재판 과정 중 진정서 제출 담당자(보험사 직원)를 증인으로 소환해 신문했는데 담당자는 척추골절의 경우 유합술을 받으면 으레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하니 당연히 청구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진정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수사의뢰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약 2년 동안의 재판 결과,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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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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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씨는 재판 중 암에 걸려 무죄가 확정된 후 몇 달 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청구하지도 않은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했다며 보험사기를 의심해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보험사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 담당자 때문에 정신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SIU는 보험사기를 전담해 대응하는 보험사 특별조사조직입니다.

한 변호사는 “지금도 재판 과정에서 원래는 거뭇했던 머리가 선고일 즈음에 가서는 완연한 백발로 바뀌었던 모습, 암으로 며칠 동안 혼수에 빠졌다가 회복돼 목발로 간신히 재판정에 출석했던 A씨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결국 보험사 SIU 직원의 황당한 보험사기 의심이 한 가정의 남편이자 가장, 누군가의 아버지의 소중한 한 생명을 앗아간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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