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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핼러윈 참사 유족, 시청 앞 분향소 기습설치…"평화로운 추모 왜 막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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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00일' 하루 앞두고 녹사평역서 출발해 2시간 추모행진

당초 신고장소 아닌 서울광장서 집회…경찰과 몸싸움 및 대치

용산 대통령실 인근서 '공식 사과하라' 구호 10번 내리 연창

행안부 이상민 장관 파면, 독립적 진상규명기구 설치 등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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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인 故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 등 유가족 등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를 출발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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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광장을 막고 광화문으로 나오려는 분향소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앞 (방송)트럭 주변으로 모여 주십시오. 분향소를 차릴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경찰이 접근하는 걸 막아 주십시오!"

4일 오후 1시 11분경 서울시청 옆에 위치한 서울도서관 앞에선 한 여성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용산구 녹사평역 앞 분향소에서부터 이어져 온 추모행진 참여자들에게 핼러윈 참사를 기릴 수 있는 온전한 분향소를 차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마이크를 잡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그날의 진실을 못 찾게 한 이들은 누구인가. 누가 우리를 가로막았나"라며 "참사 당일 경찰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유족들은 갑작스럽게 선포된 국가 애도기간에 제대로 된 위패, 분향소도 차리지 못한 채 떠밀리듯 장례를 치러야 했다. 애도를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150여 명을 포함한 시민 2천여 명(주최 측 추산)이 시청 앞에 모인 가운데 천막을 설치하려는 유족 측과 경찰 사이엔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당초 광화문광장 앞을 목적지로 신고하고 광화문에서 참사 추모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시청에 도달하자 기습적으로 분향소 설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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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핼러윈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등이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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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광화문광장 근처에 기동대 경력 3천여 명을 미리 배치했던 경찰은 안내방송을 통해 해산과 천막 철거를 요구했다. 경찰 측은 이 분향소를 서울시로부터 점용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시설물'로 판단했다. 또 시민대책회의 등이 기존에 신고했던 장소 범위를 벗어나 서울시청에서 운집하고 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해 사법 처리를 위한 채증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천막 철거를 위해 나온 파란색 조끼를 입은 서울시 공무원 70여 명은 경찰과 함께 유족 측과 대치 중이다. 유족과 시민대책회의 등은 "참사 100일이 되어 평화로운 추모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경찰이 무슨 권한으로 막나"라며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를) 방해 말라"고 맞섰다.

주최 측은 전날 '정부서울청사 앞 세종로 공간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시(市)는 '열린광장' 원칙에 어긋난다며 안전 등의 문제로 어렵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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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등은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했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여진 모습.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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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일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벌어진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의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핼러윈 데이를 맞아 밀집한 시민 중 15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트라우마로 세상을 등진 10대 생존자 1명까지 더해 159명이 희생됐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초유의 참사였다.

앞서 유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참사 99일째인 이날 오전 11시 녹사평역 앞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삼각지역, 서울역을 거쳐 서울시청까지 5km가 넘는 거리를 행진했다. 검은색 패딩 또는 점퍼를 걸친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나타내는 붉은빛 목도리를 걸치고 별 4개가 달린 배지를 착용했다. 네 개의 별은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 구조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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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추모에 나선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등이 녹사평역을 떠나 행진 중이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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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과 일부 종교인들은 희생자의 사진이 담긴 영정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절기 상 입춘(立春)에 해당하는 날이었지만, 맹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국정조사와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꼬리 자르기'에 그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는 게 유가족의 입장이다. 희생자의 부모, 형제자매 등의 얼굴빛은 어두웠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행진 선두에는 '진실'이란 단어를 사람 사진 대신 넣은 영정을 태운 차량이 앞장섰다.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하라!' 등의 대형 현수막을 든 이들도 뒤를 이었다. 이들은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참사의 최고책임자, 행안부 장관 파면하라",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하라", "재발방지 및 안전사회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구호만 10번 내리 외치기도 했다. 고(故)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우리 아이들이 왜 그 자리에서 돌아오지 못했는지 대통령은 충분히 유가족에게 설명하라"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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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다다른 핼러윈 참사 유족 등이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는 대형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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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던 딸 김OO님', '세상을 항상 넓게 보던 김OO님', '심장과 같았던 아들 김OO님', '늘 같은 편에서 사랑을 알려준 사람, 박OO님', '진실하고 성실한 배우 이지한님',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았던 임OO님'… . 추모 행렬은 사회자가 가족들이 고인에게 남긴 인사를 담은 희생자의 이름을 선창하면 "기억하겠습니다"를 연이어 외쳤다.

유족 등은 서울역 도착 직전에야 잠시 짐을 내려놓고 주최 측이 미리 준비한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한기가 가득한 길바닥에 앉아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청과 광화문이 가까워질수록 행렬에 합류하는 인파는 늘었다. 시민대책회의 등은 앞서 예고했던 오후 2시를 30분 가량 넘겨서야 본 행사인 '10·29 이태원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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