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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경찰 물러나라” 이태원 유족, 서울시청 앞 분향소 기습 설치…충돌로 일부 병원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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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광화문 광장 분향소 불허에 시청 앞 기습 설치로 맞대응

공무원 등 철거 진입 시도에 희생자 가족 쓰러져 병원 이송

현장 응급 치료 돕는 홍승권 이사 “이태원서 일어난 일 여기서 또 벌어질 뻔… 위중한 상황”

세계일보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유가족 및 참가자들이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는 경찰을 밀어내고 있다. 최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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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할 권리를 보장하라! 경찰은 물러나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기습적으로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서울시 공무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유가족이 인파에 휩쓸려 쓰러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태원 참사 100일째를 하루 앞둔 이날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서부터 종로구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추모 행진을 진행했다. 주최 측 추산 2000여명의 시민이 행진에 동참했다.

당초 유가족들은 지난달 30일 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 내 추모공간을 설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시가 불허한 바 있다.

이날 오후 1시10분쯤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서관 앞에 행진대오가 도착했을 때, 시민대책회의 측은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막아 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려 한다. 경찰을 막아달라. 분향소 설치를 도와달라”고 외쳤다.

이후 희생자들의 영정을 든 유가족과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도서관 옆 인도에 있던 경찰 통제선을 밀어내며 공간 확보에 나섰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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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추모 분향소를 기습 설치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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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과 시민들은 “추모할 권리를 보장하라”,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경찰이 이러면 안 된다. 물러나라”고 외치며 시청 앞 광장 방향 인도로 올라섰다. 종교인들과 야당 의원 등도 선두에 서 경찰을 등진 채 팔짱을 끼고 밀어붙였다.

서울도서관 왼편 인도에 공간이 마련되자 시민대책회의 측 활동가들이 트럭에서 물품과 천막을 하역해 추모소 설치를 시작했다. 시민들도 천막을 손에서 손으로 옮기며 힘을 보탰다. 천막 4개동이 설치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영정을 든 채 분향소를 바라보듯 에워쌌다.

이에 인근에 배치됐던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신고한 집회 장소가 아닌 시청 광장으로 이동해 집회를 하고 있다”며 불법행위에 대해 채증하겠다고 통지했다. 경찰은 재차 “천막 주변에서 물러나기 바란다. 매우 협소하고 안전사고가 우려된다”고 방송을 하자, 시민들은 “물러가라”고 응수했다.

오후 2시13분쯤 10여분 만에 분향소는 설치됐고, 유족들과 시민들은 이를 에워싸며 경찰의 진입을 막아섰다.

시민대책회의는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시청 앞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 노란 점퍼를 걸친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합류했다.

그러나 오후 2시20분쯤 ‘재난안전대책본부’ 재킷을 걸친 서울시 공무원 70여명이 분향소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하면서 또다시 충돌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 누나인 A씨가 쓰러져 국립의료원으로 이송됐다.

현장 응급 의료를 돕고 있는 홍승권 대한가정의학회 록향의료재단 이사는 “이태원에서 일어날 뻔 한 일이 여기서 벌어졌다”며 “A씨가 처음에 2~3분간 의식을 잃어서 매우 위중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씨에 대해 “분향소 대치의 가장 앞에 있던 분”이라며 “서울시 공직자들이 계속 진입을 시도해서 현상 유지해라, 인사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길을 열어주더니 이들 수십명이 밀고 들어오며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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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 행렬이 유가족을 선두로 행진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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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가족은 이날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연다며 서울시에 광화문광장 사용을 신청했으나 불허 통보를 받았다. 지난달 26일 시는 KBS의 문화제 촬영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당시 KBS는 문화제 촬영을 위해 이날 오후 2시부터 4일 오전 11시까지 광장 사용 허가를 받은 상태였으나, 이후 추모대회 개최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유가족 측 설명이다. 그러나 시는 지난 1일 “추모제 참석 인원이 많고 앞선 행사 정리작업으로 안전이 우려된다”며 광장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불허 통보를 재차 전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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