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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드리포트] 중 정찰기구에 '호들갑'…미국은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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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북한 무인기 파동으로 홍역을 겪은 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미국에서 중국 정찰기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몬태나 주의 파란 하늘에서 반짝이는 하얀 물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게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찍은 영상이 SNS를 타고 번졌고 망원렌즈로 당겨 찍은 영상을 통해 하얀 풍선 아래 마치 인공위성처럼 생긴 물체가 달린 모습이 공개되면서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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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까지 보도되기 시작하자 미군 당국도 브리핑을 통해 이 정체불명의 물체가 정찰용 풍선, 그러니까 정찰기구라고 밝혔습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현재 미 본토 상공의 고고도 정찰기구를 탐지해 추적 중"이라며 "미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이를 면밀히 추적·감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 정찰기구가 중국 것임을 확신한다"라며 "목적은 분명히 정찰이며, 항적은 몇몇 민감한 장소 위를 지나갔다"라고 전했습니다.

정찰기구가 목격된 몬태나 주에는 핵미사일 격납고가 있는 맘스트롬 공군기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이 기지에 150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격납고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이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정찰기구를 띄울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곳이란 얘기입니다. 보고를 받은 바이든 대통령이 군사적 옵션을 물으면서 F-22 등을 동원해 격추시키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잔해가 지상으로 떨어질 경우 민간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군 당국의 만류에 따라 중단됐습니다.

'사실무근' 방방 뜨던 중국…이번에는 바로 "유감"



인상적인 건 영공을 침범한 걸로 지목된 중국 당국의 반응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상황을 파악 중이다", "쌍방이 함께 냉정하고 신중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는 등의 반응을 내놓더니 몇 시간 안 돼 문제의 풍선이 중국에서 날아간 비행선이라고 인정하고 유감까지 표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비행선이 '군사용'이 아닌 '민수용'으로 미국 측이 주장한 것처럼 '정찰용'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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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

기상 등 과학연구에 사용되는 비행선인데 서풍의 영향을 받은 데다 통제 능력상 한계에 부딪히면서 예정된 항로를 심각하게 벗어났다는 설명이었는데, 워낙 물증이 확실한 상황에서 무조건 부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재미있는 건 미국이 문제의 풍선을 당장이라도 포획해서 바로 분석해보면 진실이 드러날 것 같지만 CNN 보도를 보면 미국 역시 고도 6만 피트, 약 18km 높이에 있는 거대 물체를 포획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미국이 최대 패권 경쟁국으로 지목한 중국의 기구가 미 본토 영공 위를, 그것도 민감한 군사시설 주변을 날아다녔으니 설사 중국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별로 믿음이 가진 않는 게 사실입니다만) 조용히 넘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시간 3일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 방문을 불과 하루 앞두고 돌연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해 1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면 정상회담 이후 후속 논의를 위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60여 년 전 미국…지금 중국과 닮은꼴



정리해 보면 미국으로부터 인권이나 외교 등 온갖 문제로 공격받을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들던 중국이 이번에는 납작 엎드렸습니다. 무엇보다 남의 나라 영공을 무단 침범한 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누가 봐도 정찰용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보니 무조건 발뺌하는 것보다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떠나 엄청난 침략이라도 당한 것처럼 연일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미국은 이런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걸까요?

미국이 군사 강국이 된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바로 정보력입니다. 정찰위성이 그 정점에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인공위성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냉전시절 구 소련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던 미국은 어떻게든 소련 영공에 잠입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의 방공망은 철옹성이었습니다. 미국이 생각해 낸 건 까마득히 높이 날아 방공망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첩보활동을 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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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2 정찰기

그래서 등장한 게 일명 '드래곤 레이디'로 불리는 U2 고고도 정찰기입니다. U2는 7만 피트, 약 21.3km 상공에서 작전이 가능합니다.(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록히드 마틴 홈페이지 수치를 참조했습니다.) U2는 냉전 초기 소련의 대공 미사일을 피해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가만있을 소련이 아니었고 1960년 결국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꼬리가 잡혔습니다. 당시 소련 정부가 U2 격추 사실을 공개하자 미국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종사까지 생포한 사실을 공개하며 압박하자 미국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파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 측 비난에 U2는 공격용이 아닌 정찰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련 측은 자리를 박차가 나갔고 정상회담은 파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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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2 정찰기 추락 잔해

60여년 전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어딘가 많이 겹쳐 보이지 않으신가요? 미국은 이후에도 정찰기 운용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U2가 격추되자 이번에는 UFO로 오인될 만큼 파격적인 디자인에 고도 8만 5천 피트, 약 25.9km에서 마하 3으로 날 수 있는 블랙버드 SR-71을 개발했습니다. 비싼 유지비 때문에 일찍 퇴역하면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정찰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SR-71의 개발 이유가 됐던 U2 정찰기는 가성비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운용 중입니다. U2가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건 아직도 어느 나라 영공 위를 몰래(?) 날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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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번에만 공개…중국 겨냥 압박용?



따지고 보면 미국이나 중국, 아니 어떤 나라든 군사 첩보 활동을 벌이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다만,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정찰기구 혹은 풍선이면 안 되고 정찰기이면 괜찮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될 리 없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벌이는 첩보 활동인 만큼 미군 당국 입장에서 보면 이번 일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미군 고위당국자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쯤 되면 미국은 왜 현시점에서 이 문제를 공식화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역시나 저만 궁금했던 건 아닌지 현지시간 3일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 브리핑 중에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에도 중국의 정찰기구가 넘어온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전에는 안 하다가 왜 이번에는 공개하는가. 왜 (공개 시점이) 어젯밤인가? 며칠 동안 따라다녔다면서요? 중국에 대한 일종의 신호인가?'

라이더 대변인은 외교적 해석에는 선을 그으면서 '이번 중국의 정찰기구가 전과 다른 건 미국 영토를 지나는 기간과 길이다. 그 외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 건 모르겠고 이번에 발견된 정찰기구가 전과 달리 활동 기간과 구간이 더 길고 넓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정도의 차이라면 정찰활동을 탐지해야 할 군 당국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일반에 공개하고 중국에게 공개 항의할 정도의 정치적-외교적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앞두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중국 측 예봉을 꺾기 위한 외교적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실제로 3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발언만 봐도 정찰기구가 미국 영토를 날아다니고 있는 이 시점에 건설적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오히려 양국 간 소통의 중요성 일깨워준다고 말하는 등 대화 의지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일반 시민과 언론을 통해 정찰기구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공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취지였다면 굳이 중국 방문을 연기할 것 없이 국무장관이 중국으로 날아가 직접 항의하는 방법이 더 맞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형 풍선 하나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다툼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래도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사진=나무위키, 중국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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