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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美·北 갈등 중심에 선 푸에블로호… "배상하라" vs "핵으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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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승조원·유족 "北에 납치·고문 당해"

美 의회 일각에선 "선체 반환하라" 발의

北 노동신문 "美에 패배 안겨준 큰 승리

또 영해 침범하면 땅덩이 통째 없앨 것"

반세기 전에 일어난 푸에블로호 사건이 미국·북한 갈등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당시 북한이 저지른 국제법 위반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이를 ‘침략 시도에 맞서 싸운 위대한 승리’로 규정하며 되레 미국에 핵무기 공격 위협을 가하는 모습이다.

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연방법원은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앞으로 소환장을 보냈다. 북한 평양에 있는 ‘외무성’이 소환장 송달 주소로 명시됐다. 소환장에는 “송달 시점부터 60일 이내에 답변을 하거나, 연방 민사소송 규정에 의거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세계일보

북한 평양 보통강에 전시된 푸에블로호를 배경으로 인민군 복장을 한 남성이 시민들에게 반미 교육을 하는 모습. 북한은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뒤 그 선체를 반환하는 대신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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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유족 등 116명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납치와 고문 피해를 입었다”며 1인당 최대 1335만달러(약 163억원)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미 연방법원에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VOA는 “북한이 소환장을 송달받는 순간부터 소송이 시작된다”면서도 “소환장을 북한에 송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55년 전인 1968년 1월23일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는 북한 원산 앞 공해(公海)상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던 중 북한 초계정의 공격을 받았다. 승조원 83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푸에블로호는 북측에 나포되고 말았다. 국제법상 영해 바깥 공해에서는 군함과 민간 선박 모두 항행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북한의 행동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었다.

미국은 즉각 한반도 주변에 전략자산을 증강 배치하는 등 대응에 나섰으나, 직접적 군사행동에는 부담을 느꼈다. 무엇보다 북측에 붙잡힌 승조원 82명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대결 대신 협상을 택한 미국은 북한과 30여 차례의 비밀회담을 진행했다. 결국 나포 후 325일 만인 1968년 12월23일 승조원 82명, 그리고 사망자 1명의 유해가 판문점을 통해 미군에 인계됐다.

다만 푸에블로호 선체는 반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배는 현재 평양을 흐르는 보통강에 전시돼 북한 주민들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푸에블로호 사건 55주년을 맞아 미 연방의회 하원에선 “북한 정권으로부터 선박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결의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세계일보

2012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 나포를 주도했던 북한 해군 155부대를 방문해 부대원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전한 조선중앙TV 화면. 155부대는 강원도 문천에 주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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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호 사건을 ‘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 이긴 자랑스러운 역사’로 규정한 북한 당국으로선 당시 승조원들의 손해배상 청구도, 미 의회 일각의 선체 반환 요구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북한을 견제하고 각종 제재를 부과하기 위한 구실로 치부하며 미국에 ‘말폭탄’을 쏟아붓고 나섰다.

지난달 2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영웅 조선의 선언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불변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보도는 “조선(북한)은 패전국, 패배자의 낙인을 미국의 이마빡에 찍어놓은 강국”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이어 “만약 제2의 푸에블로호가 우리 영해에 또다시 들어온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공해상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영해 침범’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미국의 영해 침범시) 적의 항구도시나 비행장 정도가 아니라 도발자, 침략자의 땅덩어리를 통째로 없애버리겠다는 조선의 대적의지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라고 단언한 노동신문은 “조선이 이제는 핵강국이 됐다”며 “패배는 미국의 숙명”이라고 조롱을 퍼부었다. 북한 핵·미사일이 나날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미국 본토 타격도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실어 발사하겠다는 협박인 셈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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