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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3년간 마스크와 함께 자란 아이들 “나는 그냥 쓸래” [초보엄마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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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은 친구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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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178] 축구할 때도, 놀이터에서 놀 때도, 수업할 때도, 심지어 수영할 때도 아이들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다. 축구하다 숨이 차 마스크가 펄럭거려도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가쁜 숨을 골랐다. 수영장에서 한 아기가 젖은 마스크가 입에 들러붙어 숨을 못 쉬고 우는데 부모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고 있었다.

마스크를 깜빡 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아이들은 “마스크 안 쓰면 죽어”라고 외치며 코와 입을 손으로 감쌌다. 외출할 땐 외투를 입듯 마스크 쓰는 게 일상화됐고,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어도 아이들은 스스로 마스크를 내리는 법을 몰랐다. 앞니가 빠져도, 입술이 부르터도 친구들은 몰랐다. 집에 오면 강박처럼 손을 씻었다. 급식실에는 식탁마다 칸막이가 쳐졌고 양치질도 금지됐다. 아이들은 봄 내음, 풀 내음을 모르고 3년을 보냈다.

실외마스크가 완화돼도 아이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등하굣길에 마스크 쓰는 아이들이 그대로였고, 학교 정문 통과와 동시에 마스크를 써야 했다. 방과후수업으로 실외활동을 할 때도 아이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을 뛰었다. 그나마 놀이터에서 마스크 벗고 노는 아이들이 더러 보였다.

이 때문에 지난달 30일부터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됐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해제 첫날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길거리에서, 마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각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마스크를 벗고 활동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퇴근하고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었는지 물었다. 유치원생 작은아이는 벗었다고 했다. 어땠냐고 물으니 “좋았어”라고 답했다. 미소 띈 얼굴을 보니 친구들과 얼굴 마주보며 논 게 좋았던 모양이다. 반면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에 참석한 큰아이는 같은 반 아이들 전원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고 했다.

유치원 사진첩을 보니 20여 명의 아이들 중 마스크 벗은 아이들은 5명 정도다. 선생님도 마스크를 썼다. 아이들이 빠진 앞니를 보고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코로나19 확진자 접촉 만으로도 일주일 동안 집에 갇혀 지냈던 일이 먼 옛날 이야기 같다. 마스크 속에 감춰진 입모양을 보지 못해 언어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비로소 ‘입술읽기’가 가능해졌다. 더이상 ‘숨쉬기 너무 힘들면 잠깐 마스크 내리고 숨 쉬어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게 됐다.

마스크를 벗는 게 어색해, 건강이 염려돼, 민낯이 어색해, 표정 관리가 힘들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서도,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아직 마스크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인 만큼 이제 마스크 착용은 각자 선택하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끝나면 하기로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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