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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동하의 본초여담] 중풍(中風) 치료에 OO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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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파이낸셜뉴스

원나라때 의원인 주단계(朱丹溪)와 명나라때 의원인 장경악(張景岳)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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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마을에 명의로 소문난 주씨(朱氏) 의원이 있었다. 주 의원은 쉽게 진단하고 처방도 빠르게 내렸기에 환자들은 주 의원이 의술에 도통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주 의원의 약방에는 특히 중풍 환자들이 많았다.

주 의원은 중풍 환자가 오면 “왼쪽이요? 오른쪽이요?”라고 물었다.

물론 진맥도 하고 관형찰색(觀形察色)도 했지만 마비된 팔다리의 좌우를 중요시했다.

환자가 “왼쪽이 마비요!”라고 하면 “반신불수 중에서 왼쪽을 쓰지 못하는 증상은 어혈(瘀血)이나 혹은 혈(血)이 부족한 상황에 해당하니, 사물탕에 도인, 홍화, 죽력, 생강즙을 넣어 쓰면 되고....”라고 하면서 약방문을 적었다.

또한 환자가 어눌한 말씨로 “어른찍이 마벼어!”라고 하면 “오른쪽을 쓰지 못하는 증상은 담(痰)에 속하고 기(氣)가 허한 것이므로 이진탕이나 사군자탕에 죽력, 생강즙을 넣어 쓰고, 말이 어눌한 어삽(語澁)은.... 담(痰)이니... ”하면서 약방문을 적어 내려갔다.

중풍으로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오면 보통 말씨도 어눌했다. 주 의원의 이론은 간단명료해서 제자나 후학들이 많이 따랐다. 그래서 주 의원의 약방에는 제자를 자처하는 의원들도 꽤 많았다.

그 마을에는 장씨(張氏)라는 의원이 있었다. 장 의원은 주 의원이 어떻게 환자들 보는지 항상 궁금하게 생각했다. 사실 중풍이라는 것이 증상이 급변하기 때문에 한두처방으로 쉽게 치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 의원이 어찌 그리고 쉽게 진단하고 자신있게 처방할 수 있는지 의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주 의원의 약방에 직접 가서 진찰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장 의원은 조용히 주 의원이 진찰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주의원이 진찰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한숨이 나왔다.

‘휴~~ 어찌 저리 쉽게 판단하는 것일까? 모두들 주 의원의 주장을 무작정 믿기만 할 뿐 그 잘못됨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구나. 뒤따르는 제자들 또한 자신이 서서히 늪에 빠져들고 있음을 모르고 있음을 어찌할꼬....’라고 걱정했다.

주 의원이 중풍환자를 보면서 “좌측은 혈(血)이고 우측은 담(痰)과 기(氣)니....”하면서 약방문을 쓰고 있을 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 의원이 불쑥 “대체로 사람 몸의 기혈(氣血)은 본래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왼쪽만 혈(血)이고, 오른쪽만 담(痰)과 기(氣)란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주 의원과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장 의원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주 의원의 의론(醫論)에 누구도 토를 다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 의원의 얼굴과 말투를 보니 공부를 꽤 한 의원임을 눈치채고는 무시할 수 없었다.

주 의원은 약방문을 써 내려가던 붓을 잠시 내려놓고 제자들과 환자들을 한번 둘러 보고 나서는 “간(肝)은 목(木)에 속하고 위치가 좌측이며 혈(血)을 주관하지요. 또한 폐(肺)는 금(金)에 속하고 그 위치는 우측이며 기(氣)를 주관합니다. 비(脾)는 토(土)에 속하고 위치가 서남쪽에 배당되어 있어 역시 우측에 있으며 습(濕)과 담(痰)을 주관하지요. 그러니 좌측은 혈(血)로 인해서 병들고, 우측은 기(氣)와 습(濕), 담(痰) 때문에 병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장 의원이 “주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오행(五行)의 방위 순서로서 그 이치를 말한 것일 뿐이니, 그렇다면 어찌 서방인 우측에는 목(木)이 없고 동방인 좌측에는 금(金)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또한 각 경맥(經脈)은 모두 좌우를 동일하게 흐르고 있고 오장에는 모두 기와 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왼쪽에는 폐의 기운이 없고 오른쪽에는 간의 기운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왼쪽은 반드시 혈(血)과 관련된 병만 생기고, 오른쪽은 반드시 담(痰)과 기(氣)에 관련된 병이 생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주위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이 광경을 의아해하면서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제자들 중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주 의원은 전혀 당황해하지 않고 <황제내경>의 내용을 예시로 말을 이어갔다. 당시로서 <황제내경>의 내용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없었다.

“<내경>에 보면 음양(陰陽)으로 기혈(氣血)을 나누고 좌우(左右)로 경중(輕重)을 따진다고 했소. 그리고 좌우는 음양이 운행하는 도로라고 했지요. 그래서 좌우를 기혈로 구분함이 뭐가 문제요?”라고 했다.

그러자 장 의원이 “아무리 <내경>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그렇게 견강부회(牽强附會)해서 어찌 인체의 병증에 공식처럼 적용될 수 있단 말이요. 주 의원처럼 한다면 소를 모는 목동조차도 의원노릇을 할 수 있겠소이다.”라고 하자, 주 의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 의원의 제자들 또한 <황제내경>의 이론까지 비판하는 장 의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장 의원은 이어서 “중풍은 좌우로 구분해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보면 주 의원님은 음양오행이라는 망령에 빠져든 것과 같소. 단지 병이 왼쪽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혈병(血病)이고 오른쪽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담(痰)과 기병(氣病)이라고 단정한다면, 담증(痰症)이 아닌데도 담증으로 치료하고 혈증(血症)이 아닌데도 혈증으로 치료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두통의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의원들은 오른쪽 편두통은 기허(氣虛)요, 왼쪽 편두통은 혈허(血虛)라고 해서 편하게 처방하지만 분명 그 반대의 상황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마치 땅에 말뚝들을 박아 새끼줄을 쳐 놓은 것처럼 경계를 지어 놓은 것과 같으니, 어찌 우측에는 기허두통이 없고 좌측에는 혈허두통이 없겠습니까? 만약 좌우(左右)를 정해놓고 치료를 한다면 이는 자칫 마치 오류가 없는 곳을 공격하는 꼴이니, 그 폐단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때 주 의원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니, 당신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 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남의 약방에서 어찌 스승님을 욕보이는 것이요? 스승님의 이론이 틀렸고, 당신의 이론이 맞다는 증거가 있소? 이 또한 당신의 생각일 뿐 아니요?”라고 따졌다.

그러나 장 의원은 “그럼 이렇게 해 봅시다. 지금 이 약방에 있는 중풍 환자 중 왼쪽이 마비된 환자들 중 내가 변증을 해서 기병(氣病)이나 담병(痰病)이 원인으로 판단되는 자가 있다면 내 방식으로 치료해 보겠소. 당신의 스승이 주장하는 바대로라면 왼쪽 마비 환자는 어혈(瘀血)이나 혈병(血病)이기 때문에 기(氣)나 담(痰)으로 보고 치료하면 분명 악화되거나 치료효과가 없어야 할 것이요.”라고 했다. 분위기는 불현듯 의술 대결로 치달았고, 보는 눈들이 많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장 의원은 중풍 환자들 중 좌측 마비 환자들을 진맥해 보더니 그 중 기병(氣病)과 담증(痰症)으로 진단되는 환자를 한 명 선택했다. 환자는 좌측 팔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때 왼쪽 다리를 끌었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가래를 그르렁거렸다. 간혹 속이 느그르거리면서 두통과 어지럼증도 있다고 했다. 장의원은 이 환자에게 순기도담탕(順氣導痰湯)을 처방했다. 순기도담탕은 중풍으로 팔다리가 마비되고 기체증(氣滯症)이 있으며 담(痰)이 성하여 말이 어눌하거나 현훈이 있는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당연히 순기도담탕은 좌우를 구분하지 않았다.

장 의원은 환자에게 “이 처방을 잘 복용하시고 보름 뒤에 이 약방으로 다시 오시오.”라고 했다.

보름이 지난 후 주의원의 약방으로 장 의원이 도착을 했고, 한 식경 이후 환자가 약방 마당으로 걸어 들어 왔다. 환자는 지난 번에 비해 손과 팔에 힘이 생겼으면 걷을 때 다리를 끄는 것이 줄었다. 환자는 항상 목에서 그르렁거리던 가래가 줄었고 울체된 기운도 없어졌다고 했다. 또한 정신이 맑아지고 어지럼증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좌측 마비환자에게도 기병이나 담병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주 의원은 이 환자가 순기도담탕으로 좋아진 것을 보고 “내 자신이 관념에 사로잡혀 치료를 해 온 것 같습니다. 내가 중풍치료에 좌우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오로지 나의 독선(獨善)이었던 것 같소.”라는 것이다.

“이제 보니 중풍을 치료하는 방법은 좌우(左右)의 구분이 아니라 그 병이 얕은지 깊은지, 허한지 실한지, 그리고 마비의 정도는 어떠한지, 오장육부의 증상이 겸해 있는지 등을 잘 구분하는 것이겠습니다. 장 의원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라고 했다.

주 의원의 말을 듣고 장 의원은 적잖이 놀랐다. ‘주 의원은 큰 사람이구나. 이 짧은 시간에 자신의 오류를 깨고 깨달음을 얻다니 진정 의술의 경지가 나보다 높도다.’라고 생각했다.

주 의원의 제자들도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스승이 자신의 오류를 바로 인정하고 타인의 이론을 받아드리는 것을 보면서 나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장 의원으로 인해서 주 의원의 중풍 치료에 있어 좌우 이론을 따르는 후학은 더 이상 없었다. 장 의원은 주 의원의 요청에 의해서 따라 주 의원의 약방에 머물며 서로 토론하면서 환자들을 함께 치료했다. 과거에 아무리 명성이 있는 의원의 이론일지라도 장 의원과 같은 의원들이 있었기에 후학들은 무작정 따르지 않고, 기존 이론의 비판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 제목의 ○○은 좌우(左右)입니다. 또한 주씨(朱氏) 의원은 원나라 때의 주단계(朱丹溪), 장씨(張氏) 의원은 명나라 때의 장경악(張景岳)이란 옛날 의사를 빗댄 것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경악전서> ○ 論丹溪中風說. 又丹溪曰 “半身不遂, 大率多痰. 在左屬死血與瘀血, 宜四物湯加桃仁, 紅花, 竹瀝, 薑汁; 在右屬痰, 屬氣虛, 宜二陳湯, 四君子湯加竹瀝, 薑汁”. 據丹溪此說, 若乎近理, 故人多信之, 而不知其有不然也. 夫人身血氣, 本不相離, 焉得以左爲血病, 右爲痰氣耶? 蓋丹溪之意, 以爲肝屬木而位左, 肝主血也; 肺屬金而位右, 肺主氣也; 脾屬土而寄位西南, 故亦在右, 而脾主濕與痰也. 然, 此以五行方位之序, 言其理耳, 豈曰‘西無木, 東無金’乎? 且各經皆有左右, 五臟皆有血氣. 卽如胃之大絡, 乃出於左乳之下, 則脾胃之氣, 亦出於左, 又豈左非脾, 右非肝; 左必血病, 右必痰氣乎? 중략. 以此辨之, 而再參以脈色, 察其病因, 則在氣ㆍ在血, 或重或輕, 斯得其眞矣. 若謂‘左必血病, 右必痰氣’, 則未免非痰治痰, 非血治血, 而誅伐無過, 鮮不誤矣.

(단계는 이렇게 말했다. “반신불수 중에서 왼쪽을 쓰지 못하는 증상은 어혈이나 혈이 부족한 상황에 해당하니, 사물탕에 도인, 홍화, 죽력, 생강즙을 넣어 쓰고, 오른쪽을 쓰지 못하는 증상은 담에 속하고 기가 허한 것이므로, 이진탕이나 사군자탕에 죽력, 생강즙을 넣어 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이치에 맞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주장을 믿기만 할 뿐, 그 착오는 알지 못한다. 대체로 사람 몸의 혈과 기는 본래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왼쪽은 혈이고, 오른쪽은 담과 기란 말인가? 대체로 단계가 주장한 의도는 다음과 같다. “간은 목에 속하고 위치가 왼쪽이며 혈을 주관한다. 폐는 금에 속하고 위치가 오른쪽이며 기를 주관한다. 비는 토에 속하고 위치가 서남쪽에 배당되어 있어 역시 오른쪽에 있으며, 습과 담을 주관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행의 방위 순서로서 그 이치를 말한 것일 뿐이니, 어찌 서쪽에 목이 없고 동쪽에는 금이 없다고 하겠는가? 또한, 각 경맥에는 모두 좌우가 있고, 오장에는 모두 기와 혈이 있으니, 가령 위의 대락은 왼쪽 젖 아래로 나왔고 비위의 기도 왼쪽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왼쪽은 비가 없고, 오른쪽에는 간이 없다고 하겠는가? 또한, 어떻게 왼쪽은 반드시 혈과 관련된 병이고, 오른쪽은 반드시 담과 기에 관련된 병이라고 하겠는가? 중략. 이런 방식으로 변별하고, 다시 맥과 안색을 참조하여 병의 원인을 살펴보면, 병이 기에 있는지 혈에 있는지, 또는 병이 중한지 가벼운지 정확한 진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만약 병이 왼쪽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혈병이고, 오른쪽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담과 기의 병이라고 단정한다면, 담증이 아닌데도 담증으로 치료하고 혈증이 아닌데도 혈증으로 치료하게 된다. 이는 오류가 없는 부분을 공격하는 꼴이니, 오류가 없을 가능성이 작다.)
○ 凡治風之法,宜察淺深, 虛實, 及中經, 中臟之辨. 蓋中經者, 邪在三陽, 其病猶淺; 中臟者, 邪入三陰, 其病則甚. 若在淺不治, 則漸入於深; 在經不治, 則漸入於臟, 此淺深之謂也. 又若正勝邪者, 乃可直攻其邪; 正不勝邪者, 則必先顧其本, 此虛實之謂也. ?不知此, 則未有不致敗者.(대체로 중풍을 치료하는 방법은 그 병이 얕은지 깊은지, 허한지 실한지, 그리고 중경인지 중장인지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중경이라는 것은 사기가 삼양경에 있으므로 그 병이 그래도 얕은 것이다. 중장이라는 것은 사기가 삼음경에 들어간 것이므로 그 병세가 깊은 것이다. 만약 병이 얕을 때 치료하지 않으면 점차 깊은 지경에 빠질 것이고, 사기가 경맥에 있을 때 치료하지 않으면 점차 오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병이 얕은지 깊은지를 말한 것이다. 또한 만약 정기가 사기를 이기면 직접 그 사기를 공격할 수 있고 정기가 사기를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먼저 그 근본을 돌아봐야 하니, 이것은 허와 실을 말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점을 알지 못하면 실패에 이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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