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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문서 하나에 260억 … 경매 역사를 장식한 11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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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소더비가 사랑한 책들 김유석 지음, 틈새책방 펴냄, 2만1000원


세계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 중 한 곳인 '소더비'의 역사는 헌책 거래에서 시작됐다. 창업자 새뮤얼 베이커가 작은 책방에서 고서적, 골동품 따위를 취급하다가 1744년 한 중고 서적을 경매에 부치면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첫 경매품은 예사 책이 아니었다. 아일랜드 정치인이자 왕립학회 회원이었던 존 스탠리 경이 남긴 서적들로 낙찰총액 826파운드, 현재 가치 약 3억원에 이르는 유물이었다.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현재 영국에 머물며 일상 속 역사를 소재로 저술 활동을 하는 저자는 19세기 초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소더비에서 거래된 고문서 11가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뉴본드스트리트에 위치한 소더비 런던 안팎을 산책하듯 걸으며 직접 찍은 사진과 다양한 연표·그림을 활용해 쉽게 풀어냈다. 누군가에겐 한낱 종이 더미, 심지어 오래돼 삭거나 곰팡내 풍기는 물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고문서는 여타 골동품과 다른 매력을 갖는다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우선 희소성은 많은 경매품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골동품 중에서도 제작자와 소유자가 특정되면 더 큰 희소성이 부여된다. 대통령이 주요 문서에 서명할 때 쓴 만년필, 세계적 축구선수의 자필 사인이 새겨진 유니폼 혹은 인기 스타의 애장품 등이다.

책과 문서는 이런 가치 매김에 더해 텍스트 자체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 또한 갖는다. 글로 남겨진 내용은 크든 작든 시대상을 반영하고, 반대로 글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1215년에 만들어진 영국 '마그나카르타(대헌장)'는 현재 세계사적, 정치사적 의미가 큰 문서로 평가받는다. 전제 왕권을 제한하고 자유민의 권리, 법에 따른 통치를 천명한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은 당시 왕권에 대항해 소수의 귀족 자유민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쓴 문서다. 그러나 500년도 더 지난 18세기 식민지 미국에서 이 문서가 독립 선언서의 바탕 정신이 되는 등 민주주의 초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2007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 등장한 1297년 버전 '마그나카르타'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CEO가 2130만달러(약 260억원)에 낙찰받았다.

마오쩌둥이 1937년 당시 영국의 노동당수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보낸 친필 서명 편지가 2015년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무려 60만5000파운드(약 10억원)에 팔린 배경은 무엇일까. 저자는 편지 수신인·발신인의 지위뿐 아니라 복잡한 세계질서 한복판에서 반제국주의·반파시즘 투쟁의 동지이자 냉전 시대의 적으로 두 나라가 처했던 상황을 추적하며 어마어마한 가치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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