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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화제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그리고 기자 김주완, PD 김현지[위근우의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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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퍼주면서 어떤 보답도 명예도 바라지 않은 진정한 ‘어른’의 삶

지난 연말 연초, 2부작으로 MBC경남을 통해 방영된 화제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는 두 가지 경외의 시선이 등장한다.

경향신문

장학금을 주셨는데 훌륭한 사람이 못됐다고 말하는 김장하 장학생 출신에게 김장하 선생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화답한다.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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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당연히 방송의 주인공인 김장하에 대한 시선이다. 방영과 유튜브 공개 이후 감탄과 칭송이 넘치고 입소문이 번져 설 연휴에 MBC에서 전국 방송을 할 정도로, 한평생 아낌없이 사회에 공헌하고도 그에 대해 어떤 개인적 보답과 명예도 바라지 않는 그의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흔쾌히 취재에 응하며 김장하의 선행과 인품에 대해 증언하는 모든 이들의 눈빛에는 그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 또 다른 경외의 시선은 이 취재를 이끈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에 대한 카메라의 시선이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첫 장면에 등장해 경남도민일보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를 제목인 ‘어른 김장하’이리라 생각할 정도로 카메라는 초반부터 매체에 소속된 생활을 은퇴하고 프리랜서 작업을 준비하는 그의 행보를 쫓는다. 인터뷰조차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 한사코 거부하는 김장하라는 인물의 면모를 다각도로 조망해내기 위해 100여명의 취재원을 섭외하고 찾아가 인터뷰하는 김주완 기자의 집요함은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 바로 <어른 김장하>를 보는 시청자의 경외감. 이 경외의 시선은 김장하에 대한 것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없어도 그는 스스로 빛나는 인간이겠지만, 그의 삶이 경남 진주를 넘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선 영상 매체를 통한 재구성이 필요했다. 즉 시청자의 경외는 어른 김장하에 대한 것인 동시에 <어른 김장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경외의 대상엔 작품을 연출한 MBC경남 김현지 PD(로 대표되는 제작진)도 들어가야 온당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
'평범의 의미를 일깨운 의인 김장하

선함도 놀랍지만 자신의 선의가
배반 당할 가능성을 상상조차 않는
세상에 대한 낙관은 더욱 놀랍다

그의 삶을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뒤를 밟아온 저널리스트 김주완
희망의 울림을 담아낸 김현지 PD
‘어른’의 무게를 깨닫게 해준다

어떤 훌륭한 삶이 있고, 그 삶을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쫓은 저널리스트가 있고, 그의 취재를 바탕으로 수많은 대중의 마음을 건드린 프로그램을 만든 PD가 있다. 이러한 협업 및 확산의 관점으로 <어른 김장하>에서 세 주체의 역할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틀리진 않되 부족한데, 이 셋의 관계는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순간에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 그려진 김장하라는 인물에 감격하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이 방송의 역할은 충분하겠지만, 이 셋의 역할이 교차하는 맥락을 재구성할 때, <어른 김장하>라는 텍스트는 훨씬 풍부하고 흥미로운 함의를 드러낼 수 있다.

파도 파도 미담밖에 없는 김장하의 삶을 추적하는 <어른 김장하>에서 유독 전체적인 결을 거스르는 듯 돌출되는 한 장면이 있다. 김장하의 지원을 받았던 진주신문 출신 윤성효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대화에서 김주완 기자는 “좀 발칙한 생각인지 몰라도” 10년 동안 김장하에게 1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아 적자를 메운 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진주신문 구성원들의 절실함을 떨어뜨린 것이 아닌지 질문한다. 합당한 의문이지만, 지역 언론에 대한 김장하의 아낌없는 지원과 언론관에 중심을 둔 연출 흐름 안에서 편집해도 크게 상관없을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선, 김주완 기자가 편집국장 시절 파격적인 온라인 유료화 시도를 비롯해 경남도민일보의 자생력을 키우려 한 맥락을 겹쳐 읽어내야 한다. 2013년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면, 대주주가 없어 오너 입김에 휘둘릴 일도 없는 경남도민일보의 독립성은 “자력갱생하지 않으면 죽는 구조”이기도 하다. 자력갱생을 위해 그가 택한 콘텐츠 차별화의 핵심은 “지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지역사회를 지킬 수 있는 지역 신문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김장하는 방송에서 지역 토호들도 “무서운 데가 있어야 된다”며 지역 언론의 감시 기능을 강조했는데,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경남도지사 재직 당시의 비리로 낙마하자 경남도민일보는 김주완 당시 국장 명의로 1면에 “지역 언론의 감시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했었더라면 사전에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라며 통렬한 사과문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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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선생님은 모범생 같은 의인”이라고 말한다.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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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라는 구체성은 김장하가 베푼 선행의 구체성이기도 하다. 100억원이 넘는 사회 환원의 규모보다 중요한 건(안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본인이 이사장이었던 명신고등학교 출신 학생들, 가정폭력 피해자 피난 시설, 진주시 극단 현장 등 그의 지원이 진주라는 공간을 토대로 구체적인 이름과 삶과 고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강 같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의 사회공헌은 차라리 구석구석 스민 모세혈관에 가까워 보인다. 진주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형평운동의 의의에 대해 말하며 김장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적 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제로 그의 공헌은 가난이나 성별에 의한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얻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다큐멘터리로서 <어른 김장하>의 만듦새가 뛰어난 건, 김장하의 지원을 통해 자기 삶의 가능성을 열어냈던 개인들의 살아 숨 쉬는 스토리 덕이기도 하다. 또한 이처럼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각각의 삶과 고민, 불평등이 공동체의 문제가 되기 위해선, 땅에 발붙인 추상적이지 않은 언어가 공론장 안에서 순환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경남도민일보는 <어른 김장하>에 대해 “이번 작품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지역 신문 출신 기자와 지역 방송 피디의 협업이다. 지역 이야기는 지역 언론사가 가장 잘 다룰 수 있음을 또 한 번 증명”했다고도 했는데, 그들이 지역 곳곳에 남은 김장하의 궤적을 세세히 쫓고 구성할 수 있는 건, 그들 역시 공론장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다큐 초반 나온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이야기는 새삼 의미심장하다. 김장하에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었던 그가 감사 인사를 하러 가자 김장하는 “자신은 사회에 받은 걸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 갚아야 할 게 있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 무욕의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김장하의 세계에선 사회에의 기여가 자신에 대한 보답과 다르지 않다. 범인(凡人)으로서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꼿꼿하고 욕심 없는 그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초인 같지만, 정작 그만이 자신의 성취가 오직 사회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또렷이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위대한 아이러니가 있다. 홀로 고고히 뻗은 나무 같지만, 오직 서로에 기대야만 설 수 있다는 걸 가장 잘 아는 사람. 그에게 사회란 절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끊임없이 모두가 개입하고 노력해야만 사회는 사회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도움을 받았음에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장학생의 인사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 화답한 것도 단순한 위로나 덕담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사회를 지탱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위대하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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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칼럼니스트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PD가 과거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숙의민주주의 성취를 담아낸 수작 <놀이터 민주주의>를 연출했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우연이다. 아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통합 창원시에서 시도된 시민주도형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 과정을 2년에 걸쳐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에서, 각각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주민참여단은 놀이터 부지 선정부터 완성까지 길고 긴 시간 서로의 입장과 논거를 나누며 최종 합의에 이른다. 평범한 이들에게 합당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잠재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낙관과 희망의 증거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어른 김장하>에서도 반복된다. 김장하의 선함은 그 자체로 놀랍지만 자신의 선의가 배반당할 가능성을 조금도 상상하지 않는 낙관은 더더욱 놀랍다. 그는 자신에 대한 마타도어에 대해 화를 낼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며, 세월이 지나 결과를 보면 알지 않느냐 반문한다. 낙관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 평범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 어떤 간계도 평범한 사람들을 영영 속일 수 없다는 믿음. 앞서 말한 세 주체가 사회에 대한 같은 믿음을 공유해 다큐를 완성했고, 시청자가 그 믿음을 받아들이며 메시지는 완성된다.

<어른 김장하>를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의 위대함에 다가가고 싶다는 동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의심도 대가도 없이 선불해준 믿음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평범함 안에서 위대함의 가능성을 믿어볼 수 있다. ‘어른’이란 평범함의 진짜 무게를 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므로.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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