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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부동산 경매 시장 큰 장 선다… 하반기 감정가 떨어진 물건 봇물 이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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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매 시장에 큰 기회가 올 것인가. 새해 들어서도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면치 못하면서 경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불황기에 싸게 나온 경매 물건을 잡아서 몇 년 버티다보면 큰 수익이 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기록적인 역전세난이 불거지면서 다양한 매물이 경매 시장에 나올 것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임대차법 통과 이후 전세금이 한껏 높아지자, 일부 투자자들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인 ‘갭’이 줄어드는 틈을 노려 다량으로 주택을 매수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록적인 역전세난이 나기 시작했고, 금리가 천정부지로 올라 전세자금대출 여력은 줄어들었다. 세입자 입장에서 감당해야 할 전세금의 한도가 확 줄어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고가전세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이런 요인이 중첩되며 사실상 임대차법이 유효기간을 다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대차법은 전세금이 오르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인데, 전세금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어 세입자 입장에서 굳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계약을 연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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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인근 꼬마빌딩 밀집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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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 채의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 입장이라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전세금을 낮춰 달라”는 요구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현금 여력이 넉넉한 집주인이라면 떨어진 전세금을 돌려주면 되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한 집주인도 많다.

가파른 상승장에 취해 현금이 생기는 대로 족족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계약서를 썼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며 새해에는 보증금 반환을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더 극대화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 일부가 경매 시장에 나와 집값 하락을 더 부추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매 나오는 아파트 빠르게 늘어
실제 경매에 나온 서울 아파트 숫자는 빠르게 느는 추세다. 12일 법원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경매가 진행된 서울 아파트는 35건이었다. 이 수치는 지난해 9월 67건, 10월 107건, 11월 162건, 12월 134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경매에 나온 강남 3구 매물은 1월 7건에서 9월 13건, 10월 19건, 11월 31건, 12월엔 22건으로 집계됐다.

연초 기준으로 아직 경매 시장은 한산한 분위기다. 일단 한두 차례 유찰은 당연한 절차가 된 상황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매 절차를 진행한 서울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76.5%였다. 전월(83.6%)보다 7.1%포인트 떨어졌다. 2013년 1월(74.1%) 이후 9년 11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은 지난해 12월 17.9%로 11월(14.2%)보다는 다소 높아졌지만 여전히 10%대로 저조했다.

2022년 연간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는 94.1%로 2015년(91.0%) 이후 최저치였다. 집값이 급등해 경매 시장이 뜨거웠던 전년(2021년·110.9%)과 비교해서는 16.8%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2022년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31.0%로 2021년(73.5%)의 반 토막 수준이다. 평균 응찰자 역시 6.8명에서 4.5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지역 연립·다세대주택(빌라) 낙찰가율 역시 11월(84.9%)보다 하락한 평균 79.8%를 기록하며 80%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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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경기지역 아파트 낙찰가율도 73.7%로 2012년 8월(72.8%) 이후 10년 4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인천은 68.0%로 2014년 6월(53.7%)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저를 찍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1월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단지 전용 101㎡ 매물은 당초 감정가가 26억2000만원에 책정됐다. 하지만 두 차례 유찰 끝에 18억6892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71.3%다. 최초 감정가 10억4000만원이었던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전용 47㎡는 같은 시기 4번째 입찰 만에 6억3699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은 61.2%를 기록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역롯데캐슬파크엘’ 전용 59㎡는 지난해 10월 감정가 15억원에 처음 경매에 나온 뒤 두 차례 유찰 끝에 12월 처음 감정가의 64% 수준인 9억6000만원에 경매가 진행됐다. 하지만 응찰자를 찾지 못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한 강남 아파트 역시 경매에서 잇따라 유찰되고 있다. 1월 11일 입찰이 진행된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6차 전용 144㎡도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

이 물건은 경매 시장에 나왔을 때부터 유찰이 유력했다. 감정가(49억원)가 현 시세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같은 단지 동일 면적 최근 실거래가는 46억5000만원, 호가는 44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감정가는 약 6개월~1년의 시차를 거쳐 경매 현장에 반영된다”며 “그동안 시세 변화가 없었다면 감정가는 비교적 정확하지만 그 기간 동안 매매시세 하락폭이 가팔랐다면 감정가는 시세를 훨씬 웃돌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법원경매로 나온 건 2020년 10월 22일 이후 2년 3개월 만이었다. 그 당시 압구정 현대8차 전용면적 107㎡ 입찰에는 9명이 몰렸다. 최종 낙찰가율은 114.36%로 감정가(21억1000만원)보다 3억원 비쌌다. 오랜만에 나온 알짜 매물 경매에 사람들 관심이 쏠려 낙찰가율 100%를 초과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던 것이다. 2년 새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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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타워팰리스도 1월 10일 경매 시장에서 주인을 찾지 못했다. 타워팰리스 전용 162㎡가 최저매각가격 32억원에 2회 차 입찰이 열렸지만 또다시 유찰된 것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104㎡도 지난해 11월, 5년 만에 경매 시장에 나왔으나 응찰자가 없어 두 차례 유찰된 바 있다. 이 매물은 2월 2일 최초 감정가(27억9000만원)의 64% 수준인 17억8560만원에서 3차 입찰을 진행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집값이 계속 하락하자 경매 시장에 관심을 둔 입찰자들이 급매 대비해서도 가격이 상당히 낮을 때만 응찰하고 있다”며 “올해도 부동산 시세가 계속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당분간은 수차례 유찰된 물건이 아니면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 꼬마빌딩 인기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매 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서울 꼬마빌딩이 경매 시장에서 비교적 선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감정가 75억원 이하 근린상가(꼬마빌딩) 평균 낙찰가율은 100.1%로 감정가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94.74%) 대비 크게 높은 것이다.

지난해 6월 용산구 한강로3가 6층 규모의 꼬마빌딩은 응찰자가 31명이 몰렸다. 감정가(33억8967만원)보다 20억원가량 높은 53억원에 낙찰됐다. 이 꼬마빌딩은 개발 기대감이 높아진 용산정비창 재개발 구역에 위치해 수요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7월에는 중구 묵정동 5층 규모 꼬마빌딩에 응찰자 7명이 몰렸다. 감정가(41억8069만원)보다 약 9억4000만원 높은 51억2550만원에 낙찰됐다.

10월에는 창동역 역세권인 도봉구 창동의 한 꼬마빌딩이 감정가(52억9835만2500원)보다 20억원가량 높은 73억5168만원에 매각됐다. 이 물건에는 응찰자가 33명이나 몰리면서 138.8%의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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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 앞에서 응찰 예정자들이 게시물을 살피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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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 아파트 시장에서 급락장세가 펼쳐진 것과 달리 꼬마빌딩 경매 시장은 비교적 선방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근 건물 매매 사례와 토지 가격 등을 기준으로 감정가를 매기다보니 아파트와 달리 감정가가 인근 시세를 밑도는 수준으로 결정됐다”며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성진 부땡톡 대표는 “서울 꼬마빌딩은 일시적으로 떨어지더라도 결국에는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오른다는 믿음을 시장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며 “주변에 개발 호재 등이 있는 꼬마빌딩은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시장에서도 비교적 높은 가격에 경매 낙찰이 이뤄지는 분위기도 관측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미성2차 전용 118㎡ 평형은 1회 유찰된 후 1월 10일 진행된 2차 매각에서 낙찰됐다. 낙찰가는 최저입찰가인 29억2800만원보다 3억2200만원가량 높은 32억5000만500원을 기록했다. 당시 3명이 동시 입찰했는데 2위를 차지한 사람이 써낸 가격은 낙찰가보다 약 1억3900만원 낮은 31억1100만원이었다. 해당 물건의 낙찰가율은 최초 감정가인 36억6000만원의 89% 수준이다. 지지옥션이 최근 발표한 지난달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76.5%)을 훨씬 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월 3일 정부가 내놓은 규제 완화가 다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말 이후로 정부는 빠른 속도로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1·3 대책을 통해서는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뺀 나머지 지역에 대한 규제지역을 전부 해제했다.

이에 따라 세금과 대출·청약 등 부동산을 사고파는 데 연계된 규제가 큰 폭으로 줄었다. 서울 아파트 값이 2주 연속 낙폭을 줄이는 등 시장도 충격에서 차츰 빠져나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시세보다 저렴한 경매 물건이 나오자 경쟁이 붙은 것이다. 현재 시장에 나온 동일 평형 매물의 호가는 38억~44억5000만원 선이다.

고준석 대표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집값이 급락한 후 감정가가 매겨진 매물이 본격 경매 시장에 나오게 된다”며 “이때부터는 경매 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그림에서 아직 경매 시장에 뛰어들 때가 아니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팽팽하다.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장은 “서울 아파트는 앞으로도 4~5년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시적으로 주변 시세 대비 싼 것 같은 경매매물을 잡아도 1~2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싸게 산 게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아직까지 수도권 아파트 시세 바닥을 논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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