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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폐 끼쳐 미안합니다” 생활고 성남 모녀, 마지막까지 월세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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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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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빚에 시달리면서도 월세와 공과금은 밀리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도 남은 계약기간 8개월 치 월세를 걱정했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오전 11시 30분쯤 경기 성남시 한 다가구 주택에서 70대 어머니 A씨와 40대 딸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은 10년 넘게 월세를 내며 이곳에 거주하던 모녀가 며칠 동안 인기척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자택을 강제 개방해 이들이 숨진 것을 발견했다.

집안에서는 이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됐다. 2장짜리 유서에는 “장사하면서 빚이 많아졌다” “폐를 끼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남은) 월세를 처리해 달라”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유서 내용 등을 토대로 두 사람이 채무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몸에서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 대신 자영업을 하는 딸 B씨가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고 주변 이웃들은 전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빚을 내 생활해온 모녀가 갈수록 늘어나는 빚을 갚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녀는 적지만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차상위계층이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50만원의 월세와 공과금은 밀리지 않고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모녀는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정부는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전기·가스요금 등 공과금의 일정 기간 체납시 위기가구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부검을 마친 모녀는 장례 없이 함께 안치됐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란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의 지하에서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원을 넣은 봉투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말한다.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비슷한 사건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수원 권선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건강문제와 생활고 등으로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나왔다. 이로부터 세 달 만인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000여원의 연체를 알리는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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