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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우크라이나전쟁은 도대체 언제 시작되었나?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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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방 세계의 책임 묻는 이해영

다극 체제로 이행할 세계 질서 톺아

‘러시아에 면죄부’ 비판 제기될 수도


한겨레

지난 1월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부차의 한 건물 벽에 이탈리아 출신 도시 예술가 ‘티브이보이’(TVBOY)가 그리고 서명한 그래피티. 개전 뒤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철수한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사실이 드러나 러시아를 향한 국제 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진 바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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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 질서

이해영 지음 l 사계절 l 1만8000원

전쟁은 1년 전에 시작되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진격해 하루 만에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우크라이나전쟁)은 여러 차례 양상을 바꿔가며 어느덧 1년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의 원인과 경과, 해법을 두고 다양한 입장들이 교차하며 논쟁과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국제정치경제 전공자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그중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서방 세계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에서 찾는 방향의 지정학적 분석을 대변한다. 한마디로 미국이 주도해온 ‘글로벌 단극 체제’가 러시아를 적으로 삼고 옥죈 결과 전쟁이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는 러시아의 팽창주의 또는 제국주의를 주목하거나 언급하는 접근과는 대척점에 서고, 풀이와 해법을 두고서도 격렬한 논쟁을 산출한다. 이 책은 ‘내러티브 전쟁터’에 참전하고 있는 한쪽 진영의 사고 구조를 점검하기 위한 목적 아래 읽는 것이 적절하다.

지은이는 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을 꾀하는 ‘네오콘’이라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의 전쟁이라기보다 미국과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대리전’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본격화되어 우크라이나에까지 순번이 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은 지은이가 꼽는 전쟁의 근인(近因) 가운데 하나다. “나토의 동진 혹은 팽창이 러시아의 실존적 위협이라는 명제는 멀리는 1991년 냉전 해체 이후부터 가까이는 2014년 마이단 사태 이후까지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개전 사유(casus belli)의 요추다.” 냉전 해체 당시 미국과 서방 세계는 소련에 ‘나토는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겠다’고 약조했으나 이는 ‘공약’이 되었고, 동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옛 소련 국가들까지 속속 러시아를 포괄하지 않는 유럽의 안보 시스템에 가입해온 바 있다.

그중 “내전과 영토 분할, 신냉전” 등의 위험을 안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모스크바가 수용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예외적인 안보 리스크인 한편, 바로 그 이유로 네오콘이 주도하는 “21세기 미국 대전략의 최대 목표”에 부합한다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유일한 패권 국가로서 단극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시나리오는 ‘동시성’, 곧 도전해오는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와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네오콘이 우크라이나를 지레로 삼아 러시아를 옥죄어 이곳에서 전쟁을 ‘유인’해 그 힘을 빼고, 서쪽 아닌 동쪽으로 몰아 중국과 경쟁하게 만드는 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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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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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이 전쟁에 ‘내전’의 성격이 있다는 사실도 한껏 부각한다. 근대에 들어서야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우크라이나 내부에는 크게 세 가지의 정체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시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 주로 중남부와 동부에 있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인, 마지막으로 종족적으로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등이다. 지은이는 소련 해체와 독립 뒤 ‘갈리시아 패러다임’(민족주의)과 ‘동우크라이나 패러다임’(다종교·다종족·다문화)이 어느 정도 타협 속에서 공존해오다, 2004년 ‘오렌지 혁명’부터 본격적으로 대립했고 2014년 ‘마이단 혁명’을 겪으며 ‘돈바스 내전’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내부 분단이 고착됐다고 본다. 특히 마이단 혁명 이후 노골적인 민족주의·인종주의를 동력으로 삼아 ‘후진적인 러시아’를 ‘청소’하려는 ‘네오나치’ 정치 세력이 우크라이나에서 과잉 대표된 맥락에 주목하고,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을 의심한다. “미국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이유로, 또는 우크라이나의 민주화를 지원한다는 구실로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나치 집단의 뒷배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전쟁은 2022년 2월이 아니라 돈바스 내전이 일어났던 “2014년에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그때부터 이어진 전쟁의 한 경과점”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풀이는 사태의 더 큰 의미를 묻는 기획에 복무한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이 주도해온 단극 체제의 파열로 이어지고, 앞으로의 세계 질서는 ‘다극’ 체제로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때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서방이 주도하는 단극 체제에 저항해 다극 체제의 문을 여는 주된 행위자로 상정된다. “앞으로 세계는 서방(한국 포함) 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와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에 몰린 저개발국)로 블록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은이는 “‘국제 관계의 민주화’라는 미증유의 과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러의 새 프로젝트는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지각 변동 속에서 한국이 ‘비미국화’를 통해 좀 더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중간지대 혹은 중립공간의 창출”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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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던 지난 1월10일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대공무기를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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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다양한 반론과 논쟁이 제기될 텐데, 무엇보다 러시아에 전쟁 책임의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문제가 두드러진다. 전쟁의 일방인 러시아를 ‘악마화’하지 않고 역사적 연원을 따져 미국과 서방 세계의 책임을 드러내고 묻는 것은, 이 책의 집필 의도대로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연원이 곧바로 전쟁의 알리바이가 될 순 없다. 이 전쟁은 확실히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미국의 기획을 비판할 목적으로 러시아의 기획을 단지 ‘대항’ 차원으로만 풀이하는 것도 균형적이지 못하다. 이 전쟁을 “‘대유라시아 프레임워크’라는 빅픽처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이라 보는 러시아 스스로의 기획은 과연 무엇인가? 이는 ‘다극’을 내세웠다고 해서 러시아와 중국의 행위들에 그에 걸맞은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느냐는, 궁극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또 다른 일방이자 침략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결권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지 않은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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