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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암 덩어리에 위출구 2곳 다 막혀도 초음파내시경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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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컬 인사이드] 박세우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초음파내시경 유도하 위장문합술'

초음파 화면 보면서 내시경 넣어

소장·위 스텐트 설치 우회로 조성

안전하면서도 빠른 쾌유 가능해

위출구 폐쇄환자 치료대안 기대

한림대동탄성심, 전세계 최초로

소화기 전용 혈관조영장비도 도입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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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물 한모금이라도 다시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게 온 가족의 소원이었어요. 이렇게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른 아침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병동. 서경제(67·남)씨의 보호자가 외래 진료를 앞두고 회진을 돌던 박세우 교수의 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씨는 2020년 7월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 당시 암이 제법 진행된 상태여서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시행했다. 전체 췌장을 들어내고도 보조항암화학요법까지 받았다. 이듬해 5월 복막으로 암이 전이돼 다시 항암화학요법을 하고 추적관찰을 하던 중 의료진으로부터 다시 암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컨디션이 크게 나빠져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서씨가 심한 복통과 반복적인 구토 증상으로 황급히 병원을 다시 찾은 건 작년 4월. 복막전이가 더욱 진행된 탓인지 육안으로 보기에도 서씨는 배가 복수로 심하게 불러 있었고 온 몸에서 황달 증세가 보였다. 박 교수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담즙이 배출되어 위로 흘러나오는 길인 수입각(afferent loop) 소장과 위에서부터 음식이 내려가는 길인 수출각(effernet loop) 소장이 막혀있었다. 췌장암 재발로 복막과 위장의 주요 통로까지 종양이 침범한 탓에 위로 통하는 출구 2곳 모두 꽉 막혀 버린 것이다. 박 교수는 "수입각에 스텐트를 삽입해 길을 낸다고 한들 수출각이 소장에 완전히 붙어있어 시술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흔히 ‘콧줄’이라 불리는 경비위관(nasogastric tube)을 통해 고여있는 액체 성분을 밖으로 빼내면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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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보호자는 "죽기 전에 물 한모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며 매달렸다. 고심하던 박 교수는 소장 천공 등 많은 위험성이 있지만 시술을 감행키로 결정했다. 정식 명칭은 초음파내시경 유도하 위장문합술. 초음파 화면으로 보면서 내시경을 진입시킨 뒤 수입각 소장과 위, 위와 수출각 소장 사이의 2곳을 각각 연결하는 스텐트를 설치해 우회로를 조성하는 고난이도 시술이다. 이미 암이 소화기계 곳곳에 퍼져 있어 우회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근 개발된 내강밀착형 스텐트(lumen apposing metal stent)를 사용해 무사히 시술을 마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매우 좁아져 있는 소장 내강을 천자한 다음 바늘을 통해 다량의 물을 주입해 소장을 넓혀 새롭게 개발된 스텐트를 삽입하는 데 성공했다"며 "시술 후 담즙과 위 내용물이 원활히 순환되면서 부작용 없이 환자 상태가 호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와 가족들이 간절하게 바라던 대로 콧줄이 아닌 입으로 식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수술로만 치료가 가능했던 위출구 연속 폐쇄 환자를 내시경으로 치료한 국내 첫 사례였다.

초음파내시경 유도하 위장문합술은 안전하면서도 빠른 쾌유가 가능하다. 수술이 불가능한 위출구 폐쇄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치료 대안이 되고 있다. 췌장암으로 수술 받은 환자의 15~20%가 복막파종으로 인한 위출구폐쇄를 경험한다. 하지만 추가 수술을 받기에는 몸상태가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암으로 막힌 부위에 직접 스텐트를 삽입하면 6개월 이내에 최대 50%까지 다시 폐쇄가 발생해 재시술을 받아야 한다.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한 중재술은 위장문합술 외에도 담낭배액술, 담관배액술, 췌관배액술 등 다양한 시술에 적용 가능하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소수의 숙련된 시술자에 의해 시행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국내에서는 아직 제도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합병증 발생에 대한 우려가 높아 시행 사례가 드물었다. 다행히 최근 1~2년새 초음파내시경 유도 하에 위벽 또는 십이지장벽 등으로 담도, 담낭, 췌관 등의 폐색 부위를 확인하고 스텐트를 삽입해 배액시키는 치료방법이 신의료기술로 인정 받으며 사용 기회가 넓어졌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을 비롯해 다양한 초음파내시경 유도하 중재술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고난도 초음파내시경 중재술을 더욱 활성화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 최초로 소화기내과 전용 혈관조영장비를 도입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초음파내시경 중재술은 난이도가 높지만 천자와 동시에 봉합이 이뤄지는 스텐트가 개발되면서 천공 등 합병증 우려가 크게 줄었다"며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절차를 표준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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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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