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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시민들에게 건네는 유가족의 진심 “눈물조차 안 나오던 날, 대신 울어줘 고맙습니다”[이태원 참사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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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태원 핼러윈 참사 100일을 3일 앞둔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서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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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방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참사 이튿날 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한덕수 국무총리, 외신 기자회견에서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 묻는 질문 듣자)

“같은 편이네”(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국조 청문회에서 유가족들이 정쟁에 가담했다는 취지로)

전대미문의 도심 속 참사로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지난 97일간 또 다른 비극을 마주했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막말’이었다. “놀러 가서 죽은 게 뭐 억울하냐” “또 돈 받으려 그러는 거 아니냐”는 혐오의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산산이 조각난 유가족의 마음을 다잡은 것은 시민들이 건넨 손이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54일간 약 2만5000송이의 꽃과 약 1만통의 편지가 놓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엄동설한을 뚫고 야외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로 나왔다. “밥은 꼭 챙겨 먹으라”며 식음을 전폐하는 유가족을 챙긴 이들도 있었다.

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스물여섯명은 연대의 손을 내민 시민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경향신문에 보내왔다. 편지에는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과 자원봉사자, 건강을 챙겨준 주변의 이들에게 그간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말,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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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가족 편지. 유가족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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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너무 힘이 들어서인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분향소 지킴이를 하던 중 어떤 여성분이 아이들 앞에서 묵념하셨고 슬프게 울어주셨습니다. 그 이름 모를 시민의 흐느낌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저에겐 위로가 돼주었습니다. 재현 아빠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지켜주신 자원봉사자분들께, 작은 사탕 하나도 방문객 발걸음에 치일까 봐 하나하나 소중히 정리해주시고, 추모객분들의 한 자 한 자 써 내려주신 글들이 날아갈까 일일이 테이프로 붙여주시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동생은 하늘나라에서 깨지지 않은 알사탕을 먹으며 추모객분들의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양희준 누나 양현아”

유가족들은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함께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말과 포옹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고 최혜리씨의 엄마 김영남씨는 “거리의 어느 중년 부부와 여러 시민이 ‘함께하겠다’ ‘절대 잊지 않겠다’ 한 마디가 많은 위로와 힘을 줬다”고 적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전국 곳곳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지킨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가 이어졌다. 고 최보성씨의 누나 최연화씨는 “영하 17도 날씨에 녹사평 분향소에 나오셔서 꽁꽁 얼어버린 국화들을 난로에 들고 녹이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요즘 세상은 저에게 차디찬데, 여러분들이 내밀어 주시는 손들이 참 따뜻하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글씨를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았다. 희생자 고 채현인씨의 엄마 B씨는 “분향소 지킴이를 할 때 자원봉사자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 걸면 ‘아니에요. 제 친구, 제 딸 같다고 하면서 당연히 도와야죠’라고 한다. 그런 분들의 말과 행동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지인들의 위로와 격려도 유가족을 보살폈다. 고 이수연씨의 엄마 이화정씨는 “문밖의 세상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함께 울어주시고 눈물로 기도해주신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 인사 드린다. 40일 동안 문 앞에 사랑의 도시락을 전해주셨다”며 “‘언제까지고 기다릴게요’ 하며 믿고 맡겨주신 학부모님과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저를 꼭 안아줬던 아이들 감사합니다”고 썼다.

이 밖에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이나 추모제를 열 때 도움을 준 시민단체 활동가, 참사 당일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한 소방 구조대원과 이태원 상인 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15만명·2만5000송이·1만통···54일 동안 ‘1번 출구’ 지킨 ‘시민 어벤저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2221645021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서로의 버팀목 된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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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참사 100일을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후속조처를 요구하는 성명 발표 후 희생자 159명의 안식을 기원하는 159배를 진행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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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참사로 아들을 잃은 김현숙씨에게 최고의 심리치료 선생님은 다른 유가족들이다. 지난 1일 기자와 통화한 김씨는 “참사 소식을 듣고 매일 울었고,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나마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생겨 다른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눴다. 다른 희생자인 배우 고 이지한씨의 엄마 조미은씨와는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지만 두시간 동안 통화하며 속마음을 나눴다. 다른 유족들도 메시지를 통해 김씨의 안부를 묻거나,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트라우마 센터를 직접 추천해주기도 했다.

고 문효균씨의 부친 문성철씨는 매주 일요일을 기다린다. 유가족 모임이 열리기 때문이다. 유가족협의회 대책 회의를 마치고 식사 하는 도중에는 서로 “어떻게 지냈어요” 묻는 대화도 오간다. “이태원 사고 난 애들 얘기를 다른 사람이랑은 못해요. 죽은 사람 얘기하는 거 싫어하거든. 근데 다른 유가족이랑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서로 자녀 사진 보여주면서 살아있을 때 얘기를 하면 잠시나마 행복해요.”

시민들이 건넨 위로와 공감은 상처받은 유가족의 마음을 움직였고, 변화시켰다. 고 이상은씨의 부친 이성환씨는 “안전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선한 마음으로 봉사를 실천하며 살겠다고 다짐해본다”고 말했다. 고 김원준씨의 누나 A씨는 “저 또한 다른 이에게 선한 마음 베풀고 살겠다”고 했다.


☞ [전문]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이 시민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이태원 참사 100일]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2021652001


[인터랙티브] 피할 수 있었던 비극, 이태원 참사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itaewon/)


☞ 피할 수 있었던 비극, 이태원 참사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itaewon/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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