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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산재 사망 늘었으니 무용하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집행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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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산재 사망 전년 대비 8명 증가

성과 없었다면 집행 실효를 높여야

경향신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구 서울사이버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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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000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 또는 질병으로 숨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 시행 1년을 맞았다. 16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은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시행 전부터 위헌성 논란이 불거졌고,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말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킨다”며 중대재해법을 비판했다.

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중대재해 통계가 나오자 중대재해법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2022년 중대재해 현황’을 보면, 지난해 644명이 중대재해로 퇴근하지 못했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기업에선 산재사고 사망자가 256명이 발생해 전년보다 8명이 되레 늘었다. 이를 두고 중대재해법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안전보건 인력을 채용하고,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유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중대재해법은 시행 뒤 1년간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정말 효과가 없는 것일까. 경향신문은 지난달 31일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출신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51)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강 교수는 “안전보건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법령에서 시행 첫 해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해서 폐지 또는 개정 논의가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중대재해법 무용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중대재해법을 보완·강화하거나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다. 중대재해법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이례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중대재해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모든 법령에는 모호한 부분이 일정 부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판례가 쌓이면서 가닥이 잡혀간다. 아직 판례가 없기 때문에 모호성이 문제가 된다면 고용노동부, 검찰이 공익적 차원에서 피의사실을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때문에 사업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주장하면 수사당국이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기소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질의·회시(노동부 행정해석)를 통해서도 내용이 구체화될 수 있다.”

- 형사법인 중대재해법보다 오히려 감독행정에 관한 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 더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한다. 산안법상 안전보건 조치를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산안법상 안전보건규칙(679개)이 매우 많다고 하는데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규칙 92조(정비 등의 작업 시의 운전정지 등)는 4개항에 걸쳐 기계 정비 시 가동을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계 가동장치에 잠금장치를 하고 그 열쇠를 별도 관리하거나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기계를 가동하는 에너지원 자체가 차단되지 않아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4개항으로는 이런 사고를 충분히 예방하기 어렵다. 일단 관련 위험에 구체적 명칭을 붙이는 게 급선무다. ‘정비 등의 작업 시의 운전정지 등’은 너무 추상적이라 공자님 말씀처럼 보인다. 이에 반해 미국 안전보건규칙은 ‘위험한 에너지원 차단(잠금·표지)’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영어로는 LOTO(Lock-Out, Tag-Out)라고 한다. 아울러 미국 규칙은 일반 산업, 건설업, 해상업 등을 구분해 세부적 규정을 두고 있어 분량도 50쪽이 넘는다. 물론 국내에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에너지 차단장치의 잠금·표지에 관한 기술지침’이 있다. 하지만 행정규칙도 아니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해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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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중대산업재해’가 229건 발생했는데 검찰이 기소한 것은 11건이었다. 기소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의지와 전문성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 검찰은 사업주의 산안법 위반 혐의를 30여년간 다뤄왔다. 그간의 집행 관행을 보면 안전보건 분야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산안법 위반보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를 중심으로 사망사고에 접근해왔다. 다행히 최근엔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안전보건을 중심에 두기보다 경제 상황을 늘 고려하기 때문에 사업주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만약 영국·미국 등처럼 안전보건 조직이 노동부로부터 독립적인 외청 형태였다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수가 더 많았을 거다. 정권의 태도도 중요하다. 미국의 한 연구를 보면 정권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에 따라 사업주들 태도가 달라진다. 공화당 정부일 때 기업이 안전보건 예산을 줄였다.”

수사 때 경영책임자 출석요구 중요
언론 보도 늘며 안전 감독 관심 커져


- 정부의 의지는 어떤 것으로 확인할 수 있나.

“중대재해법 관련 수사 시 경영책임자 출석요구가 중요하다. 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를 책임주체로 보고 처벌해왔기 때문에 경영책임자는 처벌로부터 자유로웠다. 이 문제 때문에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규정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경영책임자가 발품을 파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필요하다. 중대재해법을 열심히 이행했다 해도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은 만큼 그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직접 소명을 해야 한다.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신분이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고가 229건 발생했으니 200명이 넘는 경영책임자가 수사기관에 나갔어야 한다.”

- 중대재해법 시행 뒤 현장에서 안전규정이 강화되고, 안전관리자 인력도 증가하는 등 긍정적 변화가 있다고 한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안전관리자 인력 채용이 늘었다. 민간 안전보건기관 인력들이 대거 기업에 채용되는 흐름도 있었다. 건설업의 경우 안전감시단이 확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위험요인을 찾고 그에 맞는 개선책을 세운다기보다는 일단은 사고를 틀어막자는 차원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언론의 보도량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예전과 달리 노동부가 중대재해 발생 시 간략한 개요를 언론에 배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면 언론보도 1건이 산업안전감독관이 210번 감독하는 효과를 낸다고 한다. 보도가 사용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 산재 예방 제외 안 돼
2019~2021 건설안전 패트롤 점검처럼
현장 고려한 공식적 매뉴얼·지침 세워
“예외 없으니 뭐든 해야” 메시지 줘야


- 5~50인 소규모 사업장은 내년 초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의 93.8%는 ‘유예기간 연장 또는 적용제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중대재해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소규모 사업장도 당연히 산재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안전보건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다만 30인 미만의 경우엔 당장 적용이 가능할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객관적 조사에서 부작용이 크다고 나오면 고민을 해봐야 한다. 문제는 사용자단체의 설문조사만 있지 소규모 사업장 상황에 대한 정부 차원의 충분한 조사가 없다는 점이다. 재계는 로펌 등 많은 자원을 동원해 중대재해법을 공격하는데 이에 상응하는 행정조직, 연구 등이 부족하다. 어떤 로펌은 1년간 80억원 벌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노동부는 고작 국이 하나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엄청난 불균형이다.”

-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소를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하나.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산업단지별 공동안전보건관리자 선임 등의 지원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장이 서류만 갖춰두는 형식주의로 흐를 우려도 있다. 그래서 이 분야야말로 감독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엔 관련 연구가 거의 없다보니 그간 제대로 된 감독 전략이 없었다. 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안전보건감독 종합계획’은 드디어 전략이 보인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위험사업장 8만개소를 선별·집중관리하고 위험경보서를 교부하고 그 중 정기감독 대상을 선정해 ‘위험성 평가’ 특화점검 형식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정책이다. 다만 일회성 계획에 그치지 않도록 안전보건 감독원칙을 분명히 하고 공식적인 매뉴얼·지침을 만들어 집행의 통일성을 기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정책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9~2021년(2020년 상반기 제외)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주축이 돼 진행한 건설안전 패트롤 점검은 전략적 안전보건 점검의 좋은 사례다. 당시 건설소장과 대표이사 단톡방에는 ‘이제는 뭔가 해야 한다. 예외가 없다’는 이야기가 공유됐다고 한다. 이런 메시지를 현장에 줘야 한다.”

경향신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구 서울사이버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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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자율규제 철학은 옳지만 준비 부족해
규제완화 위한 구호로 악용될까 우려


- 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말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가 제시하는 하위규범·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규범을 마련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와 이를 위한 핵심 수단인 ‘위험성 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처벌,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영국 ‘로벤스 보고서’에서 나온 자율규제(Self Regulation) 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로벤스 보고서는 1970년 국영석탄공사 사장을 지낸 앨프리드 로벤스를 위원장으로 정당 및 산업·노동 등 각 분야 대표 6명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어 2년간 조사·연구 끝에 내놓은 일터 안전보건 개선 보고서다. 자율규제라는 철학 자체는 옳다. 3년 전에 미국 안전보건청장이 한국에 왔는데 ‘노동자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사업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업주가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세부사항을 잘 알고 인력, 예산 집행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막강한 사업주가 능동적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하도록 하는 게 감독당국이 할 일이다. 정부가 아무리 법을 잘 만들고 감독관 수를 늘려도 능동적이지 않은 사업주들이 많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업종, 생산공정마다 위험요소가 다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자율규제는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몇개월 만에 만들어진 로드맵이라 자율규제에 대한 현장과 당국의 깊은 이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자율규제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들이 없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자율규제가 규제완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구호로 그칠 수 있다. 기업엔 ‘이제 긴장 좀 풀어’, 검찰엔 ‘앞으로 최소한으로 기소하고 공소유지는 크게 신경쓰지마’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

- 영국의 자율규제는 다종다양한 업종을 안전보건청(HSE)이 총괄하는 체계로 이어졌다.

“자율규제 체계가 아니면 다종다양한 업종에 대해 모두 입법을 하고 여러 부처가 관여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별 노사가 만든 자체규범이 현장에서 작동하면 노동안전보건 소관부처를 일원화하는 데 유리하다. 연구실안전법, 항만안전특별법 등 사각지대 위험 예방을 위한 새 법률이 계속 만들어지는데 기존 산안법 체계로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건지 고민해야 한다. 자율규제는 노사의 자발적 안전보건 관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안전보건 시스템을 일원화하고 효율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문제는 자율규제를 말하는 노동부가 농업, 어업 등 다른 안전보건 분야를 포괄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위험성 평가서 노동자 참여 보장 등
당분간은 법 손질보다 집행에 힘 써야


- 정부는 중대재해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법을 손질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당분간 법 손질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집행의 문제다. 노동부가 위험성 평가 중심의 감독을 하겠다고 하는데 방향은 맞다. 다만 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함께 해야 하는데 노조 조직률이 10%를 조금 웃도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실질 참여를 어떻게 보장하는지가 중요하다. 또 위험성 평가의 재료가 되는 것이 각종 중대재해 사례들이다. 아무리 오래 특정 업종에서 일했어도 자기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려면 쉽게 중대재해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정보를 검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 마련이 안돼 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안전보건 전문가 중 현장과 이론에 두루 밝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자다. 대학원에서 산업보건학을 공부하면서 안전보건 분야에 첫 발을 들인 강 교수는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공단 광주본부 안전보건지원팀, 노동부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등 공공 분야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원,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특임교수,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등을 거쳐 현재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장을 맡고 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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