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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임의진의 시골편지] 남쪽바다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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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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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 직업 때문인지 웃는 장소보다 우는 장소에 자주 있게 돼. 깔까르르 웃는 ‘웃음바다’보단 꺼이꺼이 우는 ‘울음바다, 눈물바다’ 말이야. 바다는 눈물을 모아서 짭조름. 야호! 하면서 웃게 되는 산보다는 우는 바다에 마음이 기운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노트북에 옮겼어. 바다 사진이 산보다 배나 많네. 설날 전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바닷가 구경. 또 한번은 목포항 근처에서 사진 찰칵. 부부 교사인 조카네가 아이들 데리고 비금도 섬학교에 여러 해 근무했는데, 이번에 장학사가 되어 영전했다. 하지만 비금도 섬에 아이들은 남아 있어 먼발치에서 걱정.

과거 목포 형무소(교도소)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가두었던 곳, 남한 단독정부가 생긴 뒤론 ‘여순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소작쟁의 관련자들, 제주4·3’까지 억울한 사람들이 잔뜩 투옥되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권은 목포 형무소에 갇혀 있던 무려 ‘1만400명’을 북한 인민군에 협조할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1950년 7월23일 경비선 금강호에 실어다가 비금도 앞바다에 잔혹하게 수장 학살했다. 비금도 사람들은 한동안 무서워 바다 일을 나가지 못했고, 떠밀려온 시신을 몰래 묻어주기도 했다지. 요샌 역사를 모르면서 ‘개인지도’를 하는 아는 체 박사들이 부쩍 많은데, 개인지도란 개가 인간을 가르친다는 사자성어. 억울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죽은 남쪽바다를 바라보면서 막연하게 ‘뷰티풀’만 외칠 수 있으랴. 바다를 배경으로 핏줄들과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서 사진을 찍으면 사려 깊게 못 챙긴 아픔까지도 사진에 같이 찍혀 나온다. ‘귀한 시간을 내주고 해당화 꽃다발까지 준비해준’ 나의 바다는, 꾹꾹 슬픔을 눌러 참는 표정이란다. 친구야! 닫아 건 문에 초인종을 누르렴. 영혼 없이 카메라 셔터만 누르지 말고.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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