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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경향의 눈]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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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5일 미국 뉴욕의 공립학교 인근에서 촬영된 챗GPT 연결 화면. 남북전쟁의 원인을 정리한 글이 나왔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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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 발달의 영향을 얘기할 때 초밥을 예로 든 적이 있었다. 2017년 일본에서 1시간에 초밥 4800개를 만들어내는 초밥 로봇이 등장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다. 성능이 대단한 기계였다. 초밥 1개당 0.75초. 생산 속도는 사람이 따라잡기 불가능한 수준인 데다 재료별로 초밥을 누르는 강도와 밥알 개수까지 조절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작동대로 대량생산되는 초밥이 가장 합리적인 맛을 구현한다 해도 사람이 빚는 초밥을 압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요리사의 세월과 경험이 쌓인 손맛처럼, 로봇이 범접 못할 인간과 창의의 영역이 폭넓게 존재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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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철 논설위원


그런데 이런 생각이 갈수록 바뀌고 있다. 초밥 로봇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더불어 진화를 거듭하며 일본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로 확산해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고 고급화에도 성공했다. 세계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게라는 회전초밥 점포까지 생겼다. 한 프랜차이즈 초밥 회사는 기존에 팔린 20억 접시 분량의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한 결과를 토대로 매일 오후 2시 644개 전 체인점에 당일 예상 매출과 판매량을 전달한다. 반면 1인분에 30만~50만원이 넘어도 손님이 줄을 잇던 오랜 장인(匠人)의 초밥집들은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이 침범하지 못할 인간의 영역이 좁아진 것이다. 엊그제 인공지능이 지구 기온 1.5도 상승 시기를 2030년대 초로 예측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는데, 그간 과학자들의 분석보다 실감나는 것도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근래에는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 열풍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세계 최대 인공지능 연구소인 오픈AI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챗GPT는 한마디로 척척박사다. 갖가지 질문에 답을 술술 하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코딩에 글쓰기, 발표자료 만들기까지 능숙하다. 요즘 너도나도 여기에 묻고 답한 내용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윤석열 대통령도 신년사를 써보게 했는데 훌륭했다며 잘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챗GPT는 2016년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에 비견된다. 인공지능이 깊은 수읽기를 하는 인간의 영역에 보란 듯이 들어와 자리를 빼앗고 인간의 일상까지 위협할 존재로 여겨졌던 당시 알파고의 충격파에 못지않다는 얘기다. 챗GPT도 사고와 창작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님을 더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당장 학교 현장에 불똥이 튀었다. 학생들이 챗GPT를 활용해 제출한 과제와 리포트가 높은 점수를 받자 학교당국이 이를 방지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챗GPT 사용을 금지시키고 교내 와이파이 접속을 차단하거나 과제를 줄이고 손글씨·구술 시험을 확대하는 조치가 나왔다. 인간을 편리하게 한다는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에게 불편을 끼치는 모순적인 양상이 가시화한 것이다. 이에 오픈AI 측은 교사가 숙제를 놓고 인공지능이 작성한 것인지 탐지할 수 있는 도구로 새로운 ‘텍스트 분류기’를 1일 내놓았다. 챗GPT가 자유분방한 부정행위 기계라는 평판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인공지능 발달로 야기된 부작용을 또 다른 인공지능으로 제어하려는 것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사람의 명령에 따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챗GPT는 학생들의 부정직을 부추기고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초래했다. 인공지능을 향한 이런 두려움은 궁극에는 사람 하는 일이 모두 대체될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땅과 숲을 보며 기운을 느끼는 정도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다. 챗GPT를 보고 화들짝 놀라 처음에는 부정행위를 막을 방책에만 골몰했지만 지금은 ‘이것이 미래다’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차단하고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일상에 더 가까워진 인공지능을 유효적절히 다룰 방안을 사람들이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오·남용을 막고, 윤리적으로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두려워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 도처에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성·화상과 문자를 인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당장 내일부터 모든 미래는 예측불가다. 눈앞에 인공지능이 달려가고 있는 지금이 미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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