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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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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출항했던 그 자리, 바다 위 떠오른 독도 표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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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이사부독도기념관’ 설계

심플렉스 송상헌-박정환 대표

“매립했던 부지 파내 옛 경관 재현

땅의 역사 그대로 살리려 노력”

동아일보

지난해 9월 강원 삼척시 정라동에 지어진 이사부독도기념관은 부지 일부를 4m가량 파내 매립 전 원래 섬이었던 육향산 일대 경관을 재현했다. 깎아지른 육향산 암반 아래로 1m 깊이 못을 설치해 바다 위에 떠오른 듯한 독도를 형상화했다. ⓒ신경섭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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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강원 삼척시 정라동에 완공된 ‘이사부독도기념관’은 베일에 싸인 듯 주변 경관 속에 숨어 있다. 5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다는 설이 있는 정라동 일대는 앞으로는 육향산, 뒤로는 폐조선소로 둘러싸여 있다. 삼척항과 고작 500m 떨어져 있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삼척시가 2017년 국제건축설계 공모를 냈을 때 과제는 2가지였다. ‘꽉 막힌 경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독도 기념관으로서의 역사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22개국 72개 팀이 응모한 공모에서 뽑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경관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육향산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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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대표(왼쪽)와 박정환 대표 겸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박정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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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송상헌 대표(45)와 박정환 대표(44·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지가 처한 상황을 한계가 아니라 땅의 역사라고 여겼다. 오히려 바다 경관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기에 다른 방식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념관 입구 관광안내센터에서 한 층을 내려간 뒤 물이 흐르는 길목 옆 영토수호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전면 유리창 너머로 육향산 하부 암반과 잔잔한 1m 깊이의 못이 보인다. 육향산은 마치 바다 위에 떠오른 섬과 같은 모습이다. 4개 동으로 나뉜 건물에는 모두 육향산을 바라보는 전면 유리창이 설치돼 관람객들은 기념관 어디서든 섬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신라 시대 육향산 일대는 섬이었다”며 “근대 들어 매립된 부지 일부를 약 4m가량 파서 과거의 경관을 되돌리는 한편 바다 위에 떠오른 독도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땅의 역사를 경관 자체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건축이 설계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공사 중이던 2019년 초 관광안내센터 부지 주변에서 1520년 지어진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추가 매장문화재 조사를 위해 1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성벽이 출토된 곳에서 20m 이내에는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못의 면적은 줄이고 건물 위치도 바꿔야 했다. 박 대표는 “처음 설계도와는 달라졌지만 이조차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다. ‘삼척포진성의 성벽처럼 돌을 쌓아 옹벽을 세우면 어떨까.’ 송 대표는 “삼척포진성 성벽 일부가 발견된 관광안내센터 앞에서 육향산 하부 경관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막돌 쌓기’ 방식으로 옹벽을 세워 공간의 역사성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착공 5년 만에 완공된 기념관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건축가들은 이곳이 어떻게 쓰이길 바랄까. 송 대표는 “1만4115㎡(약 4270평)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를 관광안내센터와 영토수호기념관, 독도체험공간, 복합휴게공간 등 4개 동으로 나눠 설계한 건 각각의 건물이 유연하게 다른 용도로 쓰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건물에서는 독도 전시, 다른 건물에서는 미술 전시, 광장에선 음악 공연, 휴게공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역사 강연이 펼쳐지는 상상을 합니다. 복합문화공간이 부족한 삼척시에서 이곳이 다채로운 쓰임새로 채워지길 바랍니다.”(박 교수)

삼척=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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