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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대만의 외교쿠데타"…中 극렬 반발 불렀다, 체코 전쟁영웅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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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페트로 파벨(62, 왼쪽) 체코 대통령 당선인과 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지난달 30일 전격적으로 통화하면서 중국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사진=대만중앙통신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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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전쟁 영웅’ 페트로 파벨(62)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0일 차이잉원(蔡英文·67)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갖고 협력을 약속하자 중국이 “고의로 레드라인을 밟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보는 파벨 대통령이 오는 3월 취임하면 반중(反中)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번 통화가 “타이베이의 ‘외교 쿠데타’”(로이터통신)란 평가도 나왔다. 중국은 31일 하루 동안 전투기 34대와 군함 9척을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시키는 대규모 무력시위로 반발했다.

파벨 당선인과 차이 총통의 통화는 30일 오후 15분간 이뤄졌다. 파벨은 통화 직후 트위터에 “대만과 체코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을 공유하며, 협력을 강화하기로 동의했다”며 “차이 총통과 만남을 기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차이잉원 총통은 파벨 당선인에게 “영국 런던대학 동문으로 생활 경험을 공유한 사이”라며 “앞으로 대만과 체코 양자 관계 및 지역 의제에 대한 광범한 교류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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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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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총통이 중국 수교국의 차기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16년 12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 당선인 신분으로 차이 총통과 통화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통화 직후 “대만 총통이 당선 축하 전화를 걸어왔다”며 “수십억 달러 무기를 팔면서 축하 전화도 받아선 안 된다니 흥미롭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특히 이번 통화는 중국의 외교 공세를 뚫고 이뤄졌다. 지난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화상 회담을 갖고 “지난 10년간 체코의 대중국 수출액이 2배 증가했으며 2019년 중국의 체코 여행객은 2013년 대비 250% 증가했다”고 중국의 경제 기여를 강조했다. 물러나는 제만 대통령을 활용해 체코의 대중국 정책 변화를 저지하고자 애쓴 모양새다. 제만 대통령은 2015년 천안문 승전 열병식에 참석했던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이었을 정도로 중국에 우호적이다.

반면 파벨 당선인은 정통 군 관료 출신으로 ‘반중’ 성향으로 알려진다. 파벨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중국이 경제·기술·군사 분야에서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체코와 가치와 전략적 목표가 다르다며 양자 관계 발전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체코는 중국과 무역을 발전시킬 기회가 있지만 무역 규모와 잠재력이 크지 않다”며 “대만과 협력을 제한하는 등 대외 관계의 원칙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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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8일 당선이 확정된 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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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참모총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파벨은 지난 1993년 보스니아 내전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참전해 프랑스군의 철수를 돕기도 한 전쟁 영웅 출신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카타르의 미군 사령부에 연락장교로 참전했을 정도로 전장에 익숙하다. 중도 우익으로 분류되는 파벨 당선인은 지난달 27~28일 치러진 2차 대선에서 58.3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통화 저지에 실패한 중국 외교 당국은 말 폭탄을 쏟아냈다.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중국의 여러 차례 만류와 반복된 교섭을 무시하고 기어코 중국의 레드라인을 밟았다”며 “중국은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시하며 체코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역설했다. 마샤오광(馬曉光) 국무원대만판공실 대변인은 대만을 공격했다. “민진당 당국이 ‘통화’와 ‘사진’을 이용해 ‘독립’을 도모하고자 애를 썼다”며 “하지만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력 행동도 병행했다. 통화 이튿날인 31일 중국군은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 전투기 34대와 군함 9척이 대만 ADIZ를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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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밀로스 제만(왼쪽) 체코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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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성도일보는 1일 “파벨 취임에 따라 체코의 정치권이 ‘반중’ 일색으로 바뀌면서 도발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코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인 여행객 숫자가 크게 줄고 투자까지 하락하면서 지난해 이미 ‘중국-중·동유럽 국가 지역 간 협력 메커니즘’에서 탈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해 동유럽 국가 사이에서는 안보가 경제·외교 등 일체를 압도한 상황이다. 앞서 2021년엔 동유럽 리투아니아가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사관 격인 ‘대만 대표처’를 허용하면서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중국은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대사급에서 대표처급으로 낮춤으로써 보복했다.

왕이웨이(王義桅) 인민대 교수는 “파벨 취임 후 체코는 대만 TSMC의 반도체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추세에 영합하면서 미국의 무기와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협약에서 탈퇴를 선포하고 반중의 최선봉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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