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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언제 대기 좌석 나올지 몰라…결항 때 ‘공항 노숙’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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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특보 항공기 줄줄이 결항됐던 27일 제주공항

항공편 재발권하면 차액 보전하면서 안내는 안해

숙소 못갈 형편이면 공항서 쪽잠 가능…모포 제공


한겨레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 기상악화로 항공편들이 줄줄이 결항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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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제주공항에 강풍 특보와 윈드시어(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가 갑자기 바뀌는 현상) 주의보가 내려지면서 이 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 수십편이 결항됐다. 저녁 7시40분 김포행 대한항공 항공편(KE1310)도 연기 끝에 결항됐다. 낮부터 결항이 이어져 밤 비행기는 이미 표가 동이 났다. 이 비행기를 타고 딸이 머무는 서울로 가려던 신아무개(53)씨도 결항 소식을 들었다. 신씨는 “천재지변이기는 하지만 항공사 대응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설 연휴를 맞아 아내와 결혼을 앞둔 딸이 먼저 제주 여행을 왔는데, 명절 기간 이상기후에 따른 결항으로 아내와 딸의 서울 복귀 일정이 미뤄지면서 자신이 제주로 와 합류하면서 모처럼 가족끼리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 아내와 딸은 다른 항공기로 먼저 서울로 돌아갔고, 자신이 타기로 한 비행기만 뜨지 못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오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아 결항이 될까 봐 대한항공 고객센터에 계속 전화를 걸었다. 수십분 대기 끝에 겨우 통화해 비행기가 뜬다는 걸 확인하고 공항에 나왔다. 저녁 기상 상황이 나쁘지 않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서울에서 제주로 오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니 직원이 걱정말고 공항에 나오라고 해서 렌터카와 호텔 예약을 연장하지 않았는데, 결항이 되니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이상기후에 따른 결항은 항공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신씨가 타려던 비행기는 제주 상공을 한참이나 배회하다 3차례 착륙 시도를 했지만 변칙적으로 부는 강풍 때문에 결국 착륙하지 못하고 김포로 되돌아갔다. 무리한 착륙 시도를 하다 사고가 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착륙 시도 횟수는 3차례까지로 제한돼 있다.

항공사가 탑승구 앞에서 대기 중인 승객들에게 설명한 내용은 간단했다. 자연 현상으로 인한 결항이라 보상이 불가능하고 대체항공편을 마련할 때까지 각자 편안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을 요청했다. 연락은 문자메시지로 한다고 했다. 신씨 등 일부 승객들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결항된 항공권 환불은 가능하다. 대체편이 언제 마련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대체편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른 항공권을 각자 구해도 무방하다”고 추가 안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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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제주공항에 급변풍특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졌다. 강풍에 야자수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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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 보안검색대를 나왔다는 한 승객은 뜻하지 않은 ‘복’을 받았다. 모바일로 다음날 김포행 항공권을 다시 끊은 이 승객은 역시 모바일로 기존 티켓을 환불받았다. 공항 검색요원에게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느냐고 물은 게 행운이었다. 검색요원은 별다른 설명 없이 “항공사 카운터로 가라”고 했다. 시간도 많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이 승객이 항공사 카운터에 들르니 “혹시 대한항공 비행기편을 재결제했냐. 그렇다면 이전에 할인가로 산 티켓 요금으로 새로 산 티켓의 가격을 재결제해드리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다른 승객들에게도 이런 안내를 해줬냐는 승객의 질문에 카운터 직원은 “오시는 분들에게는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항공사 홍보팀 담당자는 이와 관련해 “결항이 됐을 때 항공사가 직접 마련한 대체항공편을 탈 계획이 없고 각자 항공편을 먼저 구할 경우, 앞서 끊었던 항공권이 특가·할인석이라 저렴해 차액이 발생할 경우라면 결항됐던 항공사의 항공편을 이용하면 차액 보전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홍보팀은 “현장이 워낙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원칙만 승객들에게 고지하고 있어 차액보전까지는 현장에서 알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항공기 탑승을 위해 공항에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차분하게 스스로의 살 길을 찾았다. 다만, 계획이 변경돼 다시 1박을 해야 하는 승객들이 한꺼번에 공항 밖으로 몰리면서 대중교통 막차 시간에는 공항 앞 버스·택시 정류장이 매우 혼잡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제주 콜택시 기사들도 운행에 소극적이다. 택시 정류장 앞에서 어린 딸과 함께 택시를 기다리던 한 승객은 “택시가 잘 오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시민들은 공항 직원들로부터 “새벽 5시까지 공항을 폐쇄하니 결항이 되어도 공항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침에 공항에서 만난 또다른 승객은 “만원 심야버스를 겨우 타고 공항에서 1㎞ 남짓 떨어진 모텔에 밤 11시 넘어 도착해 쪽잠을 자다 새벽에 다시 나왔다. 공항 직원들이 공항에 머물 수 없다며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그냥 공항에 있을 수 있었다면 눈보라 치고 교통편도 구하기 어려운 공항 밖에서 혼자 영화 ‘캐스트어웨이’처럼 악천후 속 표류기를 찍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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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제주공항 운항이 재개되자 폭설과 강풍으로 발이 묶인 관광객과 도민들이 한꺼번에 공항에 몰리면서 3층 출발장이 혼잡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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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악몽’ 또는 ‘자연의 힘’을 체감한 승객들을 대신해 제주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에 제주공항 개방시간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결항에 당황한 승객이라면 제주공항에서의 노숙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날 밤 공항에서 쪽잠을 자고 버틴 70여명의 시민들에게 공항 쪽은 모포를 제공했다. 전국 14개 공항은 공항별로 커퓨(소음 방지 등의 목적으로 비행기 이착륙 제한하는 시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커퓨 시간과 공항 개방 시간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공항공사 홍보팀 담당자는 “공항별로 커퓨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제주공항은 실제 노선 운항 시간과 별개로 24시간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이라 갑자기 결항됐을 때 승객들이 공항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27일에도 공항에 남아계신 승객들에게 모포를 제공한 것”이라며 “공항 시설이 전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제주도와 함께 교통·숙박 연계 안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항됐을 경우, 중앙 안내데스크의 노란 조끼를 입은 직원들을 찾아달라”고 설명했다.

제주의 한 택시기사는 공항 측 대응에 대해 “2016년 설 명절(1월23~25일)에도 폭설 등으로 무더기 결항이 되어서 귀성객·여행객 등이 공항에 발이 묵였는데, 제주공항 수하물 포장업체에서 판매하는 종이박스를 노숙하려던 이들에게 1만원씩 판매했다고 공항이 크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애초에 큰 규격의 종이박스 가격이 1만원이어서 그렇게 팔았던 것인데, ‘자연재해를 이용해 폭리를 취했다’는 오보가 나오면서 이제 공항에서 가급적 노숙을 방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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